출산, 그리고 그 이후
엄청난 산고 끝에 아가를 만나던 순간, 그 오묘한 느낌이 생생하다. 마지막 힘주기를 할 때,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그 때 들려오던 간호사의 목소리. “엄마. 힘 주셔야해요. 아기 목이 걸려서 위험해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들어 어디에 힘주는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힘을 팍 주었는데 그 순간 아기가 나왔다.
뱃 속에서 커다랗고 몰캉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 내 몸 아래로 무언가가 비집고 나오는 느낌. 그리고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 잠시의 정돈 끝에 내 품 옆에 놓여진 너무나도 작고 어여쁜 생명체 하나.
그렇게 우리 아들은 세상에 나왔고,
난 엄마가 되었다.
자연분만을 하게 되면, 엄마 못지 않게 아기도 온 힘을 다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엄마의 좁은 산도를 통과하면서 온몸을 비틀고 힘을 주게 되고, 밖으로 나오기 위한 갖은 노력을 하게 된다. 분만은 엄마와 아기 모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눈물나는 과정임과 동시에, 함께 호흡을 주고받으며 중요한 미션을 완수해가는 협력의 과정이다.
감사하게도 우리 아가 역시 엄마의 자궁안에서 세상 밖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 관문을 잘 뚫고 나와주었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과정을 함께 끝냈음에도 나는 내자신이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처음 아이를 안아보았을 때 어찌나 새롭고 어색하던지. 이 작은 몸뚱아리에 팔도 다리도 손도 발도 있다니. 조그마한 얼굴에 있는 올망졸망한 입술. 나를 쳐다보는 작고 깊은 눈동자가 감격스러우리만치 사랑스러우면서도 이 작은 존재를 어떻게 지켜주어야하나 두려워졌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는데 나는 정말 기쁜게 맞나 싶었다. 출산이 남긴 회음부의 고통, 훗배앓이와 찌그러진 배의 튼살, 여전히 빠지지 않은 산후붓기와 체중. 임신 전의 나는 온데간데 사라진 느낌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절대 아이를 낳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걸. 이전의 나를 상실했다는 사실이 좀 슬펐다.
하지만 지금 내게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할테다. 두려움과 슬픔을 뚫고 올라오는 행복감을 맛보았으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됐다. 엄마로서의 내가 진짜 탄생하는 순간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이라는걸.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나의 젖가슴을 빨고 그런 아이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만져보던 순간. 낮잠을 자는 아이 옆에 누워있다가 잠에서 깬 아이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던 순간. 아이가 ‘으엄-마‘라고 부르며 나를 향해 기어오던 순간. 엄마로서 내가 탄생한 순간은 그 때일 것이다. 나를 진짜 엄마가 되어가게끔 만드는 것은 아이의 눈빛, 몸짓, 웃음들이라는걸,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엄마로 인해 아이가 탄생하듯이 아이로 인해 엄마가 탄생하는건 아닐까.
(오늘도 밤잠 안자고 자꾸 깨서 내가 계속 새롭게 마음을 다잡도록 만드는 우리아가. 엄청난 힘듦과 행복이 공존할 수 있다는걸 깨닫고 있다. 허허)
(아빠의 탄생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맞나 싶다던 남편은 지금 아이를 너무나 행복한 눈으로 쳐다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