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된장국

평범함, 그 안의 특별함

by 오솔


언젠가 남편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기는 어떨 때 행복해?”

나의 다소 낯선 질문에 남편은 잠시 당황하다가 답했다.

“나는 평범한 일상이 좋아. 특별히 행복한 순간이 있다기보다 그냥 별 탈 없이 지내는 게 행복해.”

“에이. 그게 뭐야.”

그때는 별로 재미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똑같은 일상을 지루해했고, 매일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됐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그리고 내가 재미없다고 여겼던 그 평범함이 많은 걸 희생하며 얻기도 한다는 걸 말이다.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가장 평범한 재료를 꼽으라면 ‘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나는 좋은 된장의 기준을 ‘국산콩으로 만든 것’ 밖에 모르는 초보 주부이지만, 시중에 파는 된장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을 고르려 애쓴다. 쿰쿰하고 구수한 향이 두드러지는 된장. 너무 짜거나 달아도 맛이 없다. 잡다한 맛이 나지 않고, 담백한 콩의 발효향이 돋보이는 된장. 일명 집된장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찾기가 쉽지 않다.


된장은 항상 냉장고 한편에서 자리 잡고 있다. 둥그렇고 퉁퉁한 유리병에 담겨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여러 채소들이 드나들고, 갖은 새로운 양념들이 쌓여가도 된장의 자리는 한결같다. 늘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마 된장만이 가진 맛 때문일 것이다. 잦은 외식과 기름진 음식들로 속이 더부룩할 때, 시금치나 아욱 같은 잎채소로 끓인 된장국을 먹으면 속이 개운해진다.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생각 안나는 날에는 애호박과 감자, 양파와 두부를 썰어 넣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인다. 식탁 한가운데 찌개를 놓고, 따뜻한 밥과 반찬 한 두 가지면 간단하게 든든한 한 끼가 완성된다. 여름이면 오이고추에 된장을 찍어먹고, 겨울에는 속이 꽉 찬 배추를 큼지막하게 썰어 배추된장국을 끓인다. 이렇듯 된장의 개운하고 구수한 맛은 사시사철 우리의 입맛을 책임지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런 된장에 유부를 넣을 생각을 이전에는 하지 못했다. 유부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 음식의 식재료를 고르는 것은 어른의 음식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늘 비슷한 것만 먹이다 보니 아이가 지겨워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식재료를 고민하던 중 ‘유부‘가 떠올랐다.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있으니 아이도 잘 먹을 것 같았다. 아이를 먹일 국은 채수에 유부와 각종 야채들을 넣고 유부국을 끓였다. 그리고 남은 유부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남편과 내가 먹을 된장국에 넣어보았다.


우선 다시마와 무로 채수를 충분히 우려낸다. 깊어진 채수에 된장을 풀고, 냉장고에 있던 얼갈이배추를 넣었다. 한번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난 뒤, 다진 마늘, 대파, 그리고 유부를 넣어주었다. 얼갈이가 부드러워지고, 유부의 향이 국물에 스며들 때까지 충분히 끓여주었다.




남편과 내 자리에는 유부된장국이, 아이의 자리에는 유부채소국이 놓였다. 된장국의 맛은 훌륭했다. 유부의 고소한 향이 된장국과 만나니 예상치 못한 맛이 느껴졌다.

“오. 유부 넣으니 맛이 엄청 달라진다. 그런데 맛있어.”

남편의 반응도 괜찮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기존에 느끼던 된장국의 맛에서 무언가 새로운 변주가 일어난 것 같았다. 더 깊은 풍미와 고소함이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된장의 시원함은 간직한 듯했다.

“어쩌다 유부를 넣을 생각을 했어? 레시피를 본 거야?”

“아니. 아기 거 만들고 남은 거 그냥 넣어본 거야.”

우연히 찾게 된 레시피를 남편에게 말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 덕분에 새롭게 먹어본 유부된장국처럼, 아이는 종종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음을.


아이는 매일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성장해간다. 어제보다 다양한 단어를 말하고, 새로운 행동을 보여주며, 더 풍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장난감 속 멜로디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기저귀가 벗겨지자 스스로 추켜올리며 끙끙댄다. 어느 날은 ‘까까‘라는 단어를 똑부러지게 말하며 간식을 달라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웃는다. 한편으로는 힘들 때도 있다. 현란한 옹알이로 자기주장을 하며 고집을 부리더니, 점점 원하는 것을 얻으려 떼쓰는 방법이 다양해진다. 밥을 안 먹고 장난치는 기술도 계속 발전한다.


어쩌면 아이가 찾아온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계속 크고 작은 새로움을 마주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걸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새로움들은 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아마 이전의 나였다면 육아와 살림으로 채워지는 똑같은 시간의 굴레를 견디기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나는 평범한 일상도 좋다. 아이와 함께하니, 별거 없는 동네 산책길도 모험하듯 걷게 되고,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것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유부 하나로 평범한 된장국의 맛이 특별해진 것처럼, 아이로 인해 난 일상의 다채로움을 느끼고 있다. 유부를 넣으니 아예 다른 음식이 된 것처럼, 아이가 생긴 나의 삶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 같다. 특별함을 쫒는 삶에서 숨겨진 특별함을 발견해 내는 삶으로.


우리는 셋다 국을 말끔히 비웠다. 깨끗해진 국그릇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다 같이 유부로 맛있게 저녁을 먹은 일. 오늘 내겐 또 하나의 특별한 일이 생겼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