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무국

우리가 연결되는 순간

by 오솔


눈부신 햇살 사이로 눈이 내렸다. 한겨울도 아닌, 3월에 눈이라니. 이전에 나는 꽃샘추위가 싫었다. 겨우 정리한 겨울옷을 다시 꺼내야 하고, 반가운 봄햇살을 뚫고 추위가 찾아오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뒤늦은 추위가 싫지 않다. 겨울을 잘 보내주는 시간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남편도 출근을 했다. 고요한 집안에서 눈을 구경하다, 냄비에 물을 올렸다. 저녁에 다 같이 먹을 국을 미리 끓여놓으려던 참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커다란 무 하나를 꺼냈다. 무를 네모나게 썰으며 생각해 본다. ‘겨울 동안 참 열심히 무를 먹었었지.’ 국에 넣어 뭉근해진 무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 중 하나였다. 겨우내 갖은 국에 무를 넣어 끓였다. 채 썰어 전을 부치기도 하고, 간장에 조린 무조림도 해 먹었다. 아삭한 생채를 무쳐서 밥과 함께 썩썩 비벼 먹으면 간단하게 한 끼가 완성됐다. 그렇게 겨울 내내 고마웠던 무를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되었다. 봄을 앞두고, 마지막 무를 샀었다. 그 무를 썰면서 지나간 겨울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를 썰고 난 뒤 소고기를 손질했다. 한입에 들어갈 작은 크기로 고기를 썰었다. 고기를 썰 때면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전에 고기가 살아있는 무언가의 살점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그걸 맛있다고, 마음껏 즐기며 먹는 내가 어느 순간 싫어져 한동안 채식을 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가다 보니, 남편과 아이는 고기를 마음껏 먹이고 싶다. 점점 그 불편함보다 나의 또 다른 욕망이 우선하기 시작했고, 지금 나는 온 가족이 먹을 고깃국을 정성스레 끓인다. 이 아이러니함을 삼켜내다보니 고기 손질도 끝이 났다.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무와 냄비를 볶았다. 기름에 볶지 않고 고기를 한번 끓여내어 국을 끓이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하면 더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진득하고 깊게 끓여내고 싶었는지, 아끼는 들기름을 충분히 둘렀다. 고기를 볶다가 무를 넣었다. 무의 수분이 나오며 재료들이 촉촉하게 어우러졌다. 다 볶아진 재료들에 육수를 붓고 오래도록 끓였다. 불순물을 걷어내고, 조금 더 감칠맛을 위해 대파와 마늘을 넣었다.


그렇게 한동안 요리를 했다. 나무 도마에 칼날이 닿으며 나는 ‘딱딱-’ 소리, 재료들이 불과 만나 ‘쉬-’하고 볶아지는 소리,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주방에는 그 어떤 소음도 침범하지 않은 채, 이런 소리들이 맴돌았다. 평온함 속에서 아이와 남편이 떠올랐다. ‘아직은 낯선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잠시 아이 생각이 났다. 그리곤 이내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이 좋아하는 고깃국을 참 오랜만에 끓여보는구나.’ 끝에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참 오랜만에 이렇게 여유롭게 지내보는구나.’ 나에 대해서도 생각한 것이다.


평소 나도 모르게 지나쳤던 생각과 감정들이 ‘요리’라는 고요한 행위를 통해 되살아난다. 그게 따뜻하고 좋은 마음일 때도 있지만, 불편하고 힘든 마음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대부분 ‘가족’이 된다. 가족을 향한 깊은 애착은 내 삶의 큰 원동력이다. 그러나 사랑이 강한 만큼, 모난 마음, 슬픔과 화도 커진다. 그런 마음은 때론 나를 갉아먹는다. 작은 주방은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주방의 도마 소리는 나를 토닥이고, 재료들이 볶아지며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도 뿜어져 나간다. 보글거리며 국물이 끓는 냄비를 바라보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들어앉는다.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할 때마다 늘 나는 누군가와 연결된다. 요리를 하는 건 혼자만의 행위지만, 그 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마주한다. 나와 가족, 친구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식물과 동물들까지도. 그 연결이 때론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늘 연결되고 싶다. 무언가에,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손을 뻗고 작은 온기라도 맞대고 싶다. 그게 나를 살리기 때문이다.


소고기무국이 푹 끓여질동안 창밖에는 눈이 그쳤다. 밝은 햇살을 보며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뭐든 늘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도 생각이 났다. 요리를 하며 아이와 남편을 향한 내 마음이 부드럽게 농익었나 보다. 소고기무국과 함께 그들을 향한 사랑도 푹 익은 듯하다.


이제 저녁이 되면 우리는 식탁으로 모일 것이다. 각자의 그릇에 담긴 밥과 국을 먹기도 하고, 같은 그릇에 있는 반찬을 나누어 먹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식탁에는 자신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이 공존한다. 그 안에서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하루 세 번, 식탁 위에서 우리는 연결된다. 서로를 살리고 서로에게 기대며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 생각에 괜히 뭉클해졌는지, 소고기무국 냄새가 너무 좋은 건지, 한동안 주방을 떠나지 못했다.







부족하고 서툰 마음들을 담아 끓여낸 <한 그릇의 위로>를 마무리합니다.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의 식탁에도 늘 따스한 온기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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