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힘은 신비하기에
아침부터 엄마는 머리를 곱게 묶어주었다. 얇은 실빗을 손에 쥔 채, 입에 머리끈을 물고 있던 엄마. 엄마는 내 머리카락을 하나하나를 빗었다. 하얀색 분무기에서 물이 ‘착‘하고 나오면, 시원한 물안개의 감촉이 얼굴과 머리에 쏟아졌다. 촉촉해진 잔머리들은 엄마의 빗질에 따라 일정하게 모아졌고, 머리끈으로 동여매자 동그란 내 얼굴이 환히 빛났다.
엄마는 정성을 들였다. 나의 시작이 조금 더 반짝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3월이면 머리를 묶는 엄마의 손길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머리묶기는 아침 시간, 엄마가 내게 주는 마지막 손길이었다. 그 이후 나는 스스로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학교로 향했다. 나보다 큰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교로 향하던 1학년 신입생. 그 두려운 설렘은 어린 내게 ‘시작’이란걸 넌지시 알려주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우리 아들의 첫 등원을 준비한다. 2월 내내 마음이 바빴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심란했다. 평소와 같이 지내다가도 어린이집 등원을 하게 될 아이의 표정이 불쑥불쑥 그려졌다. 애들 대부분이 울면서 적응해 간다는데, 우리 아이도 그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려왔다. 아직 다 준비하지 못한 어린이집 준비물 리스트가 늘 맴돌았고, 하나씩 물건들을 사고 이름표를 붙이며 그 시간을 기다렸다.
등원이 시작되고 나서도 나는 꽤나 씩씩했다. 아이를 선생님에게 안겨주자, 아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우는 아이에게 나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엄마 금방 돌아올 테니, 재미있게 놀고 있으라고. 밝고 힘차게 말했다. 이전에는 아이가 울 때면 품에 안고 토닥이며, 같이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함께 웃는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가 울어도,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스스로도 어색하고 이상했다.
혹시 모를 선생님의 호출이 있을까 봐 어린이집 근처 카페에 갔다. 커피 한 잔과 빵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한창 아이를 돌볼 때는 너무도 바라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커피도 빵도, 목구멍에서 꽉 막혀서 넘어가질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 과장해서 웃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은 이렇게 아팠었는데. 참아왔던 감정들이 여기저기 튀어 올랐다. 괜스레 휴대폰 속 아이 사진만 넘겨봤다. 자유로울 줄 알았던 시간은 알 수 없는 감정 속에 갇혀버렸다. 커피잔이 비워질 때쯤, 나는 ‘시작’에 대해 또다시 이해하게 됐다.
아이의 첫 시작으로 한 주 동안 가족 모두 무척 애썼다. 가장 고생한 건 아이일 것이다. 엄마, 아빠를 떨어져 처음으로 세상에 나아간 아이. 그 시작 안에서 아이는 어떠했을까. 걱정과 염려로 나도 우리 엄마처럼 아이의 시작에 정성을 들였다. 그럼에도 그 이후는 아이 스스로 헤쳐나가고 감내해야 한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 그저 해줄 수 있는 게 응원밖에 없어 마음이 쓰리다.
주말에는 달래요리를 해보려 한다. 한껏 긴장했던 우리를 편안하게 해 줄 음식이 될 것 같다. 3월, 사람들이 새로운 출발선을 넘어설 때쯤, 땅과 나무에서도 새순이 돋아난다. 덕분에 우리의 식탁에는 냉이와 달래, 쑥, 세발나물 등, 봄나물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무엇보다 봄나물은 모든 시작과 닮아있다. 씁쓸하지만 향긋한 봄나물처럼, 우리의 시작도 힘들면서도 또 설레었으니까. 강렬한 나물의 향기처럼, 시작이 주는 힘도 강력하니까.
봄나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달래이다. 쌉쌀하게 강한 향이 일품이라 양념간장에 넣으면 그 향이 간장에 녹아든다. 게다가 된장국에 넣으면 식감은 부드러워지고 향이 된장에 녹아 맛이 꽉 차는 느낌이다. 따뜻한 쌀밥을 지어 달래장과 마른 김을 함께 싸 먹어야겠다. 그리고 구수한 달래된장국을 끓여 함께 먹어야겠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계절을 축하해보려 한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곳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된다.‘
우리 아이도 새로운 곳을 향해 문을 열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니 지난 시간들이 아른거른다. 하루 종일 아이와 여유롭게 비비적대던 나날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벚꽃이 핀 공원을 산책하던 작년의 봄. 그 잔잔하고 소중했던 계절과 이별하는 중이다. 그리고 새로운 봄을 맞이한다. 더 분주해지고, 아이는 훌쩍 커버린 봄이다. 아이의 이번 봄은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이것 또한 아이의 삶을 넓혀줄 시간이라 믿는다. 시작의 힘은 신비하기에, 그 힘을 믿고 나는 그저 달래 손질에 집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