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없는 사랑
어릴 적, 동네에 맛있는 황탯국집이 있었다. 노르스름한 색에 진득하고 구수한 국물,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쫄깃한 황태살은 이 집의 묘미였다. 국물을 한입 떠먹으면 비릿하고 고소한 향이 입안을 채웠고, 밥을 말아 후루룩 먹으면 속이 따뜻해졌다. 아빠와 나는 그 식당을 정말 좋아했다. 내가 몸이 아플 때나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할 때 종종 아빠는 그 황탯국을 사 왔다. 엄마 없이 아빠와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도 다른 메뉴가 생각나지 않으면, 아빠는 물었다. “황탯국 먹으러 갈까?” 나는 ‘역시 그거지.’라는 무언의 반가움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살던 지역을 떠났다. 부모님마저도 타지로 이사를 했다. 이제 그 황탯국은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다. 종종 그 맛이 그리워진다.
얼마 전에도 황탯국이 먹고 싶었다. 이제는 그 맛을 사 먹을 수 없으니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 평소라면 귀찮아서 그냥 참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번거롭더라도 꼭 먹고 싶었다. 장을 볼 때 심혈을 기울여 황태채를 고르기 시작했다. 빛깔이 노르스름한 게 맛있어 보이는 황태채를 발견했다. 꽤 비싸서 고민을 했지만, 저렴한 다른 것들과 달라 보였다. 시원한 바람과 좋은 공기를 머금으며 만들어진 황태채 같았다. 조금의 사치를 부려보자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시작된 사치가 며칠 뒤 황탯국이 되어 한솥 가득 찼다. 커다란 냄비를 냉장고 한가운데 놓으며 생각했다. 나는 왜 황탯국이 먹고 싶어 진 걸까.
얼마 전, 아이에게 크게 화를 냈다. 밥을 잘 먹지 않고, 자꾸 뱉는다는 게 이유였다. 두 돌이 가까워지는 아이는 요즘 부쩍 자기주장이 강해진다. 엄마인 나는 자연스러운 아이의 발달과정임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가르치는데 집중한다.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어.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인생 2년 차인 아이에게 이런 말을 내뱉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아이가 아닌 나에게 하는 훈계였을지도 모른다.
점점 아이가 내뿜는 갖가지 요구와 충동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원하는 대로 안 됐다며 갑자기 짜증을 내고,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안아달라고 칭얼거렸다. 한번 짜증과 울음이 시작되면, 원하는 것이 충족되기 전까지 끝은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럴 것이고, 우리 아이의 울음이 엄마와 세상을 향한 건강한 요청임을 안다. 그렇지만 알면서도 귀가 아팠고 속은 시끄러웠다.
그런 순간이 쌓이고 쌓였다. 그리고 인내하고 백기를 들던 나도 어느 날 아이처럼 짜증을 내버렸다. “그렇게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너는 밥 먹을 자격 없어. “ 사랑으로 요리해서, 지혜로 먹여 키우고 싶었던 내가 아이에게 적나라한 화를 냈다. 차가운 방식으로 얼굴을 붉히고 소리를 빽 질렀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눈물이 왈칵 났다. 못난 내가 너무 싫어서. 고개를 들고 마주할 아이의 표정이 두려워서 말이다.
그날 다시 아이 곁으로 다가가 아이를 안아주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 마음이 정돈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으니까. 내가 왜 그랬을까, 어떻게 하면 앞으로 안 그럴 수 있을까.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다 문득 느꼈다. 나는 아이에게처럼 나에게도 엄격하고 날카롭게 화를 내고 있었다는 걸. 실수를 하고 난 뒤, 반성하고 책임을 지라고. 나를 끊임없이 혼내고 있었다. 어쩌면 선후관계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그렇게 엄격하게 대하고 있기에, 아이 역시 그렇게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처음으로 나를 다독여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쉬어가기보다 책임지는 게 당연했고, 위로보다는 반성이 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관대하고 싶었다. 엄격했던 아빠도 황탯국 앞에서는 무장해제되어 설레하는 웃음을 짓지 않았던가.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왠지 황탯국이 생각났다. ‘반성과 책임은 무슨. 그냥 아무 생각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먹자 ‘는 마음이 들었다. 좋아하지만 막상 만들어먹지는 않았던 황탯국, 그걸 드디어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황태채를 미지근한 물에 잠시 불렸다. 황태채를 그대로 넣어도 되지만, 아이도 먹일 생각을 하니 생선 가시가 걸렸다. 황태채에 붙어있는 가시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많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붙어있는 가시들이 막상 먹을 때 꽤나 불편하다는 걸 안다.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의 편함을 위해 가시를 발라냈다. 그리곤 들기름을 둘러 황태채와 무를 볶았다. 황태채의 구수함과 들기름의 향긋함이 섞이자 풍성한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여기에 육수를 붓고 한참을 끓이다 콩나물을 넣어주었다. 계란과 두부를 넣어도 좋지만, 국물이 텁텁해질까 봐 대파만 쫑쫑 썰어 넣었다. 한솥 가득 끓여낸 황탯국은 며칠간 내게 고마운 보양식이 되었다.
가시를 열심히 발라낸 덕분일까. 아이 역시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그동안 많은 음식을 뱉어내며 엄마의 속을 타들어가게 했지만, 황탯국은 뱉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황탯국을 맛있게 먹다 보니 아빠와 마주 앉아 먹던 그 맛이 떠올랐다. 아빠는 매사에 기준이 높고 엄격했다. 아빠의 그런 면이 때론 어렵고 차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음을 깨닫고 있다. 황태 가시들을 발라내며 생각했다. 요리를 할 땐 그걸 모두 발라내고 부드러운 살코기만을 줄 수 있지만, 진짜 사랑은 다르다고. 나는 부드럽고 따뜻하기만 한 사랑을 줄 자신이 없다. 가시 없는 사랑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엄마로서 나의 못난 면을 인정해보고 있다. 가시를 인정하는 일. 그게 가시를 발라내려는 나의 첫 번째 노력이었다. 아이에게 가시 없는 사랑은 아니더라도, 가시를 품고도 충분할 수 있는 사랑을 주고 싶다. 때론 차가운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아빠와 황탯국을 먹던 순간을 떠올리듯, 아이에게도 따뜻한 기억들을 많이 남겨주고 싶다.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구수하고 깊은 사랑을 만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