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을 내어준다는 것
“자, 짱짱아 이제 출발한다.”
시동을 켜고 기어를 변속한 후, 심호흡을 한번 했다. 어느덧 운전연수를 받은 지 100일이 다 되어가는, 나는 초보운전이다. 초보운전이라는 사실을 어쩔 때는 적당히 망각하려고 한다. 그래야 용감하게 도로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뒤에는 꼭 초보 딱지를 붙이고, 몸 구석구석 초보임을 각인하고 있어야 한다. 깊은 각인과 적당한 망각. 그 사이에서 모든 감각을 총 동원해 안전 운전을 해야 한다. 아이가 뒤에서 울지 않도록 좋아하는 동요를 틀었다. 액셀을 밟으며 주행을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집 근처의 도서관이었다. 가는 길은 5분 정도로 아주 짧지만, 몇 번의 좌회전과 우회전, 오르막길을 올라가, 주차까지 해야 하니 서툰 초보에게는 무거운 과제이다. 차에는 경쾌한 동요 소리와 내비게이션 안내음성만이 울려 퍼졌다. 동요가 세 곡정도 나오자 우리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차를 무사히 주차하고, 아이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평소 유모차를 끌고 올 때는 20여분을 힘들게 걸어왔는데 이렇게 차를 타고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와 손을 잡고 당당히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걸어가며 주차 안내 표지판을 한참을 구경하다, 날아가는 새를 보고 신나서 “짹짹”이라고 외쳤다. 유모차에만 누워있던 아이는 새로운 길을 걸으며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있고, 두려움으로 운전대를 잡지 못하던 나는 어느새 차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오늘 도서관 나들이의 목적은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빌리기 위함이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터라 금방 책을 빌렸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되는데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마침 도서관 1층에 아이들이 책 읽는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 잠시 들어가 보았다. 아이는 곳곳이 놓인 귀여운 인형들과 커다란 지구본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손으로 톡톡 만져보기도 하고 ‘엄마‘를 연신 부르며 인형들을 가리켰다. 요즘 동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동물 인형만 보면 수다쟁이가 된다. 그러다 책꽂이로 가 책을 뽑아 들었다. 읽어달라는 듯이 책을 쥐고 내 무릎으로 쏙 들어와 앉았다. 나는 금세 아이의 소파로 변신하여 품을 내어준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아이의 귀에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의 손가락은 연신 그림들을 가리키고, 눈과 귀로는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있다. 역시나 입은 쫑알쫑알 말하기 바쁘다. 아이 목소리의 볼륨을 낮추느라 진땀이 좀 나긴 했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목소리들, 깔끔하게 정돈된 책장과 소파들,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천장 위에서 빛나는 전구빛이 어우러진 환함. 나는 도서관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눅눅한 책냄새에는 많은 이들의 손길과 사색의 시간들이 묻어있다. 그곳에 나도 손때를 묻히고 흔적을 남기는 일은 또 다른 공유의 순간 같다. 그날 아이와 책을 읽으며 도서관에서 누리는 행복을 아이에게도 알려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보다, 조용한 탐구의 시간을 더 많이 갖길 바라는 나의 바람이겠지만.
아이가 좋아하던 책 몇 권을 더 빌렸다. 뭔가 내 책을 빌렸을 때보다, 더 신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왔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된장국을 끓였다. 반찬으로는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계란 4개를 풀어주고, 소금 한 꼬집을 넣어주었다. 계란말이를 할 때 나는 채소를 꼭 하나씩 넣는데, 그날은 냉장고에 시금치가 보였다. 나물로 무쳐주면 아이가 잘 안 먹기에 계란말이에 넣어보기로 했다. 흐르는 물에 시금치를 씻어내고, 쫑쫑 잘게 썰었다. 계란물에 넣어 저으니 노란 물에 초록빛이 어우러졌다. 노릇하게 구운 팬에서 물컹하던 초록빛 물은 통통한 계란말이가 되었다.
완성된 계란말이를 한 김 식혔다. 그리고 먹기 좋게 썰어내어 반쪽은 아이 식판에, 나머지 반쪽은 남편과 내가 먹을 접시에 담아냈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자 아이는 쪼르르 식탁으로 달려왔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던 반찬인 계란말이. 그러나 지금 내게는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각인되어 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이전에는 몰랐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예전의 나는 무언가를 나누는데 서툴렀다. 어릴 적 누가 내 물건을 만지는걸 참 싫어했었다. 어릴 때는 물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대상은 다른 걸로 바뀌었다. 내 시간과 공간을, 무엇보다 마음을 나누어주는 데에 서툴렀다. 그런데 이 작고 몽실몽실한 아이가 나타나고선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아이 등하원 라이딩을 위해 미루던 운전연습에 시간을 쏟고, 늘 혼자 가던 도서관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 나의 서재에 누군가 들어오는 걸 안 좋아했는데 그곳은 아이의 또 다른 놀이방이 되고 있다. 누군가는 엄마니까 당연하게 내어줄 수 있는 것도 다른 누군가에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용기를 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이는 내가 떼어준 계란말이 반쪽을 먹으며 자라고 있다. 엄마의 시간과 공간, 마음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아이만 자라는 건 아닌 것 같다. 도서관을 다녀오던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운전을 하며 뿌듯한 즐거움을 맛보았을까. 도서관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오면 더 좋다는 걸 알긴 했을까. 내가 내어주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라는 방의 벽을 허물어준 것도, 그 방에 들어와 마음껏 뛰어놀며 온기를 불어넣어 준 것도 모두 아이였다. 아이 덕분에 내가 자라나고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자주 계란말이 부쳐낼 것이다. 싱싱한 채소들을 듬뿍 넣어 부드럽고 통통한 계란말이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반쪽을 떼어주는 순간, 흔하디 흔한 반찬이 황금빛 행복처럼 느껴질 것이다. 내어주면서 느끼는 풍요로움, 그 무수한 순간들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