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장자리로부터
한 주의 끝에 다다른 일요일. 그 마무리를 축하하듯 따사로운 햇살이 차가운 집안 공기를 감쌌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이 보일러를 올리며 말했다.
“날이 춥네. 오늘은 집에서 쉴까?”
아이가 한창 활동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어디로 나갈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여유롭게 주말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이 데리고 갈만한 곳‘을 검색하곤 했다. 그러나 그날은 왠지 ’집콕‘이 하고 싶었다. 추위도 피하고, 햇살을 더 깊이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터라, 정오가 되기 전부터 온 가족의 뱃고동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는 배고픈지 자꾸 엄마에게 와서 몸을 치댔다. 밥솥을 열자 애매하게 남은 밥이 보였다. 든든하게 세 식구가 끼니를 해결하기도, 그렇다고 다음 끼니를 위해 남겨두기도 애매한 양. 자투리처럼 남은 밥으로는 김밥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김밥은 풍성한 재료가 없어도 얼마든지 맛있게 만들 수 있다. 내게 있어 김밥의 필수재료는 계란과 당근인데, 이 두 가지만 넣어도 충분히 맛이 난다. 물론 단무지와 우엉, 시금치와 햄, 어묵도 있으면 더 맛깔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적은 재료로 만드는 김밥만의 담백한 맛도 일품이다.
계란을 3개 정도 넉넉히 풀고 소금 한 꼬집을 넣어주었다. 팬에 계란을 두르고 도톰하고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그리곤 당근이 한가득 쌓일 정도로 채 썰었다. 기름을 살짝 둘러 볶아주면서 소금 간을 더해 당근의 단맛이 올려주었다. 남아있는 자투리 밥에 참기름을 둘러준 뒤, 깨를 갈아서 고소함을 더했다. 간단하게 속재료 준비를 끝내고 하나씩 차분하게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따끈한 밥을 펴고, 도톰한 계란말이 하나, 채 썬 당근을 한가득 올려서 말아주었다. 아이를 위한 작은 사이즈의 김밥도 함께 말아주었다. 김을 네 등분해서 자르고, 재료를 조금씩 올려주니 보기만 해도 귀여워지는 아기 김밥까지 완성되었다.
혹여나 완성한 김밥이 터질까 조심조심 한 줄씩 썰었다. 칼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동글동글한 김밥들이 도마 위에 줄을 섰다. 모양이 예쁜 김밥과 꼬다리 김밥들이 한 군데 모여 풍성한 한 접시가 되었다. 아이는 어제 남은 된장국을, 아빠엄마는 라면 하나를 끓여주니 든든한 점심 한 끼가 완성됐다.
아이는 동그란 김밥들을 하나씩 쏙쏙 입에 넣었다. 고소한 참기름 향과 재료들의 어우러짐 때문일까. 아이의 입은 미소가 번졌다가 김밥을 오물거리며 쉴틈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꼬다리 김밥을 가리켰다. 신기한 듯 손으로 ‘오오-’하면서 김밥을 집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건 꼬다리 김밥이야. 김밥을 썰면 양 끝에는 이런 모양이 되는 거야.”
그러자 갑자기 아이는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순간 의아해서 무슨 행동을 하는 걸까 생각하다, 이내 이해가 되었다.
“아하. 00이 다리를 가리킨 거구나. 엄마가 꼬다리라고 해서 다리가 생각났구나.”
남편과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꼬다리‘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왜 김밥의 양 끝부분을 꼬다리라고 부르는 걸까. 정말 사람의 ‘다리’에서 나온 의미로 쓰이게 된 단어인 걸까. 순간 궁금해져 김밥 꼬다리의 의미를 찾아봤다. 꼬다리는 ‘꼬리‘라는 말과 ‘-다리’의 말이 합쳐져서 덜 중요하거나 끝에 달린 자투리 같은 것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처음 세상을 배워가는 20개월 아이의 시선은 어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놀랍도록 깨끗한 호기심이 있고, 보드랍고 따뜻한 순수가 있다. 그건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너무도 쉽게 지나쳤던 걸 다시 한번 붙잡아 손에 올려두게 만든다.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제대로 바라보며 또 다른 세상을 배운다. 나의 세상이 조금 넓어지는 순간이다.
아이의 시선처럼 나를 넓혀준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할아버지였다. 구순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길을 가면서 뭘 그렇게 들고 마시는 거냐.”
“그건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는 거예요. 할아버지.”
“손에 하나씩 컵 같은 걸 들고 가던데. 그걸 왜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거냐.”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커피 한 잔이 할아버지께는 낯선 문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익숙했던 일상이 할아버지의 시선을 거쳐 생경한 장면 되었다. 낯선 장면, 그 안에서 새로운 관점이 보였다. 모두가 들고 있는 이 일회용 컵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매일 마시는 이 커피가 우리 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와 같은. 외면하던 사실들이 보였다. 그때서야 고민하게 되었다. 세상에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아이와 할아버지. 그 둘은 어쩌면 김밥의 꼬다리처럼 생애주기 그래프에서 양극단에 있는 존재들일 것이다. 생의 처음과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동그랗고 일정한 모양의 중간 김밥들에서는 볼 수 없는 다채로운 시선이 있다. 뒤죽박죽 하고 이리저리 튀어나온 속재료들처럼 아이의 시선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재료가 많아 밖으로 삐져나온 속재료들처럼 할아버지의 시선도 많은 세월과 연륜을 담고 있다. 생애 곡선 한가운데에 있는 나는 그들을 통해 진짜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그러니 김밥의 꼬다리는 더이상 자투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김밥의 가운데 부분이 예쁜 모양이 되도록 감싸주는 존재, 김밥 전체가 만들어지도록 뒷받침해 주는 부분이 아닐까. 그러니 그들은 김밥 한 줄을 완성해 주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남편도 옆에서 한마디를 보탰다.
“00아. 사실 김밥에서 진짜 맛있는 부분은 이 꼬다리란다.”
남편과 나는 꼬다리 김밥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햇살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