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현대화 그리고 향기가 여행에서 할 수 있는 역할
향기는 때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달콤한 솜사탕 냄새를 맡으면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먹으며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런 '향기의 힘'이 더욱 확장되어 서울, 뉴욕 등 특정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코로나 시국에 '향기'로 여행을 떠날수는 없을까? ASMR을 들으며 '랜선 여행'을 하는 것처럼, '향기 여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전통을 현대화하는 브랜드, 취 프로젝트의 성수동 한국의 향 팝업스토어를 방문하고 난 뒤였다. 정확히는, 팝업스토어를 경험하고 향기를 맡으며 '여기,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대나무숲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취프로젝트는 전부터 관심 있던 브랜드였다. '한국의 향'을 컨셉으로 한 향수를 출시할 때에도, 디테일하고 감성적인 문구로 브랜딩을 참 잘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번에 팝업스토어를 연다고 해 방문해보았다. 나는 공간이 주는 힘과 스토리를 좋아하는데, 취프로젝트의 팝업스토어는 '코로나 시대 새로운 여행의 방식'과 '스토리를 잘 구현한 공간' 모두를 가지고 있었고, 꼭 이 감명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지도 어플을 찾으며 프로젝트 렌트 2호점을 찾아 뚝섬역에서 걸어가는 길. 성수 일대 특유의 우직한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는 거리 한 켠에, 팝업스토어가 보였다. 사실, 너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팝업스토어 외부에서부터 깔린 자갈 그리고 풀. 성수동 거리 한복판에서 자연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입구를 찾은 기분이 이런걸까. 자갈을 스스럭 스스럭 밟으며 팝업스토어로 들어가는 길에, 벌써부터 공간이 주는 이색적인 느낌에 매료되었다.
공간 내부에도 자갈이 깔려져 있었으며 팝업스토어 전체에 하동의 차밭 향기가 풍겼다. 장바구니 역시 대나무로 엮은 듯한 바구니로 공간의 디테일을 더했다. 직원 분이 안내해 주시며 처음 '비가 내리는 대나무 숲' 시향을 도와주셨는데, 철통같은 KF 80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순간 대나무숲 한가운데에 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비에 젖은 흙냄새가 아스라히 느껴졌다. 후에 '바람이 불어오는 대나무 숲' 향기를 맡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멈추고 순식간에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 향을 하나씩, 하나씩 시향하며 그 공간을 떠올려보았다. '물안개 머금은 하동 녹차밭'을 잠시 느꼈다가(그냥 하동 녹차밭 향이 아니다. 물안개 머금은 하동 녹차밭이라는 것이 중요하다ㅎㅎ) '오얏꽃 핀 덕수궁'에 들려 꽃향기를 흠뻑 마셔보는 식이다. 마음에 드는 향을 골라 직접 향을 품은 책갈피를 만들어보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굉장히 리프레시가 되었고, 잠시나마 다른 공간에 온 듯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방문 전에도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팝업스토어를 방문하며 이런 느낌까지 받게 될줄은 몰랐다.
이미 취프로젝트는 하동이라는 특정한 지역에 기반한 향을 개발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동의 숙소와 협업하여
여행 패키지 프로그램을 선보인 적 있다. 그때도 정말 좋은 콜라보라고 생각했었는데, 컨셉에 맞게 꾸며진 팝업스토어까지 방문하고 나니 취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상품이나 한국의 향을 바탕으로 한 제품들이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만들어나가는 데 재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취프로젝트 하나를 홍보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여행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어떤 다양한 브랜드가 여행과 협업을 하며 '지역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여행을 만들 것인가의 힌트를 얻은 것일 뿐. 앞으로 이렇게 지역이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브랜드들이 여행업계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 같다. 지금도 펀딩 사이트에서 기존의 관광이나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매력적인 기획이 많고, 그런 기획을 통해 여행의 다양한 면면을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뻔한 한국 기념품이 아니라 '한국의 향'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에 대한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선물을 외국인 친구에게 선물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또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쇼핑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냥 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라 이렇게 개성 넘치고
한국을 매력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소비라면?
한편, 취프로젝트의 다른 상품(자개, 전통 매듭 반지 등) 등도 팝업스토어에 전시가 되어 있었다. 이런 상품들 역시 '전통의 현대화'를 매력적으로 일궈낸 작품들이니, '여행'이라는 영역과 접목했을 때 더더욱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내/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전통 공예 만들기 체험같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취프로젝트가 숙박업체와 협업을 한 사례처럼 다른 방식으로의 접목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눈여겨 본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방문으로, 코로나 시대에 여행의 확장에 대한 재미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스토리와 매력을 가진 브랜드들이 더욱 많아져서, 한국의 전통을 현대인의 일상에서 즐길 뿐만 아니라 관광에서 한국의 전통 이미지를 내세울 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옛것'이 아니라 현대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일상이 된다면. 관광객들이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한국에 살고 있는 나부터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