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0년의 세월 동안 '권력자의 집'이었던 곳을 다녀왔다.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독특한 힐링도 했다. 무려 대법원장 공관을 거쳐 서울시장 공관으로 쓰였던 곳인데, 이력만큼 이 저택은 위치도 남다르다. 무려 한 나라의 수도를 지키는 한양도성 성벽 위에 지어졌다.
그런 집이, 이제는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가 되었다. 공간은 다음과 같이 변화한 셈이다.
권력자의 집-> 모든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
도성을 파괴한 자리의 집-> 도성을 안내하는 공간
즉, 역설적인 공간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 우리에게 역설적인, 즉 재밌는 공간적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라고 해서 딱딱한 공간이라고 오해하기 십상. 하지만 전시뿐만 아니라 카페로도 즐길 수 있으니, 마음 놓고 떠나보자.
이곳은 도착하는 과정부터 다르다. 여기 좀 있는 사람만 살던 곳이야 하고 외치고 있다. 저택 중에서도 계단 위를 걸어 올라가야만 당도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골목길과 담장에 둘러싸인 저택은 천지차인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 속 성북동이나 평창동 저택을 생각해보면 쉽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는 걸,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뒤, 여기가 서울 도심인가? 싶을 정도로 여유 있는 정원에 2층짜리 집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독특한 구조다. 정원 구경은 잠시 미루고, 저택부터 입장하자.
1층은 한양도성과 혜화동에 대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전시도 좋지만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바로 이 모습이다.
나무 창틀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긴 프레임. 우아한 한 폭의 나무와 담장으로 쓰이는 한양도성이 보인다. 이 집의 권력과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준다. 또 다른 액자는 성북동 정경을 담았다. 한눈에 보이는 성북동의 모습은 다시 한번 이 곳이 상류층의 집이었음을 상기시켜준다.
도성을 담장으로 쓰는 발칙하면서도 우아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머리에 스치는 생각.
한양도성 같은 성벽을 누가 감히 자기 집 담장으로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이 집의 첫 번째 주인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감히 조선인은 생각조차 못했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영화제작자 다나카 사부로가 지은 집이다. 일본식 집, 적산가옥인 셈이다.
근데 마냥 적산가옥이기만 한 건 아니다. 당대 많은 사람들이 선망했던 서양식 '문화주택'이기도 하다. 위생과 기능을 강조한 서양식 문화주택은 순식간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혜화동은 문화주택이 많았던 고급 주택단지였다.
조선시대까지 미개발지였던 혜화동이 전차가 놓이며 뉴타운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바로 근처 창경원이 있고, 막 새로운 교통이 들어온 혜화동이 얼마나 좋은 땅이었겠나. 당대 최고 대학 경성제국대학까지 있던 지라 이 일대는 부유층이 거주하는 문화주택 단지가 된다.
이러한 공간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천장의 목구조를 그대로 노출해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여기까진 적산가옥 개조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나무가 편안한 뷰를 선사하는 창가와 리모델링하며 만든 벽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준다. 도성과 관련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딱 내 몸 하나 여유롭게 움직일 적당한 공간감에, 멋진 뷰까지 함께하니 아늑한 나만의 아지트가 따로 없다.
권력자의 집이었던 이 주택을 단순히 트렌드에 맞추어 개조한 게 전부가 아니다. 80년 내내 권력자의 공간이었던 곳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를 이 디테일에서 느낄 수 있다. 상류층이 독점하던 저택에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부여하며 공간의 가치를 실현시켜 준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집어 들고 편안한 나만의 시간을 즐기다, 또 한 번 감탄한 포인트.
아이들 눈높이를 맞췄구나.
사실 아지트 같은 공간도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모든 사람을 고려한 디자인이라는 게,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책상에서 느껴졌다. 저 테이블의 다른 면에는 전시를 위한 기록물 이 있다. 공간을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은 셈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 있을 계획은 아니었다. 한양도성을 걷다가 잠시 구경이나 할 겸 온 것이기 때문.
하지만 이 공간, 우리를 사로잡아 버렸다.
계획을 취소하고 카페까지 즐기고 가기로 했다. 그래야만 온전히 이 공간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층 한편에 감성적인 분위기의 실내 카페가 있지만, 이 저택에 왔다면 경험해야 하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정원으로 연결되는 테라스 자리다. 이 정원은 문화주택이자 공관으로 사용되었던 이 집의 가장 좋은 곳이다. 자, 토요일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다. 정원 다른 쪽에 아이가 있는 가족이 까르르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쨌든 이 테라스는 잠시 우리만의 것이다.
분명 서울 도심인데도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기마저 맑다. 꼭 드라마 속 나오는 마당 딸린 부자 주택이 내 것이 된 기분이다. 자연에서 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근교 카페에 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근교 카페와는 다르다. 이 곳은 서울이다. 서울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이 집의 역대 주인들을 생각해보면, 더 자명해진다. 옛날 부유한 일본인은 이걸 누리고 살았을 거다. 그 이후 권력자들도 마찬가지.
결국 이 공간이 시민에게 개방되고, 그 가치를 살릴 디테일이 있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가 아닐까 한다. 넓은 저택에서 작은 아지트를 만들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간을 조성했다. 정원을 즐길 수 있게 카페로 만들어 옛날 권력자들이 누렸던 여유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공간이 엄격하고 근엄한 박물관으로만 바뀌었다면 절대 이렇게까지 '권력자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을 거다.
오래된 공간을 개조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요즘, 어떤 가치를 담고 공간을 어떻게 보여줄지 힌트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