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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탐험가 황다은 Aug 29. 2021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의 비밀

깜깜해진 여름밤. 연천 은대리 안내판을 따라 구불구불 차를 타고 들어가면, 전구가 불을 밝혀주는 길이 나온다.


그 길 따라 도착한 끝에 1980년대 사용되던 벽돌공장이 있다. 저녁 8시에서 10 동안만 잠시 열리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늦은 , 멀리까지 찾아온 손님을 환대하듯 벽돌공장 외벽전구를 칭칭 감고 있다.



아직 제대로 오픈한 공간은 아니다. 지금은 아직 빈 공간을 무한한 상상력과 으로 채우는 전시 <Relighting> 열리고 있다. 전시 이후에는 잠시 운영을 중단한 뒤, 접경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방문은

공간을 채울 미래를 상상해볼 기회인 셈이다.


벽돌공장의 레일

"이 바닥에 공장의 레일이 있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전구가 있는 곳까지 관람하실 수 있고. 그 뒤에도 공간이 있긴 한데 위험해요."


 말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아직 완벽하게 정돈되지 않은 공간.

바닥부터 천장까지 과거가 남아있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건,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빛이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초록빛 빛은 요동친다.

덕분에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다.

헤엄치다가 빛 아래로 고개를 숙이면 마치 잠수한 것처럼 물결의 파장이 달라진다. 오징어잡이 배에 사용되었던 전구는 바다에서 노는 우리의 이정표가 된다.


빛이 만들어낸 물결 속에서 20 대학생인 나와 친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물장구를 치는 듯 재미있게 놀았다.


문화공간으로써의 개장을 앞두고 실험적인 콘텐츠로 공간이 채워졌다. 아직 공간의 성격, 공간의 분위기, 공간의 온도는 결정되지 않았다. 확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공간을 채우는 상상의 세계에서 마음껏 공간을 누빌 뿐이다.


버려졌던 벽돌 공장에 새로운 빛이 입혀졌다.

실험적으로 채워졌던 푸른빛을 신호탄으로,

이제 무궁무진한 빛깔이 이 공간을 채우게 될 테다.

앞으로 이 공간은 어떤 콘텐츠로 변화하게 될까?



"이 공간 보신 다음에는, 뒷문으로 나가서 옆에 아카이빙 공간도 관람해보세요."

직원 분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슬쩍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지금까지 벽돌공장의 미래를 엿봤다면,

이젠 공장의 과거를 만날 시간이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졌다.

여기 진짜 오래된 건물이구나?



옛날 글씨체로 쓰인 '비상구'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문과 울퉁불퉁 깎인 계단까지.

와. 진짜 날 것 그대로다.



1층에 스위치 등이 전시된 공간에는 세상에.

... 거미줄도 남아있더라.

벽돌도 약간 나가 있다.


덕분에 이 공간의 역사가 더 와닿는다.


정식 전시관이 되면 어느 정도는 보수에 들어가려나?


아쉽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식 개장을 하기   공간을 만난  다행스럽다.


울퉁불퉁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 뒤,

내 눈길을 사로잡은 문구가 있다.


사훈

성실히 노력하는  가족이 되자




... Z세대인 나와 친구는 이 사훈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게다가  글씨체까지 진짜 진지해 보이잖아.


하지만 2021년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적인 매력도 찾아볼  있었다.


벽돌을 만들기 위한 온도를 24시간 동안 체크하다가 직원들이 너무 무료해서 유행가 가사를 적곤 했단다.


무슨 노래를 적었을까? 궁금해서 열심히 온도기록지를 넘겨봤다.


어디 있지, 하며 온도기록지를 열심히 넘기던 찰나-

찾았다.



이미자의 동백꽃 아가씨. 이상은의 담다디...


옛날 벽돌공장에서 열심히 일했을 사람이 그려진다.

 기록을 읽고 있자니

 시공간을 넘나들어 소통을 하는 기분이다.


'레트로'를 보여주는 공간은 많다.

레트로 컨셉으로 조성한 박물관도 있고,

레트로 소품으로 꾸민 카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간의 이야기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드물다. 사훈과 낙서와 상장과 일상의 기록이 온전히 남아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



공간에 있었던 기록을 이렇게까지 그대로 만날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공간이 내게 깊이 다가온 것은.


아쉽게도 해당 전시는 8월 29일까지만 운영된다.

전시의 끝자락에 다녀왔기에, 마감을 눈앞에 두고 콘텐츠를 발행했다.


하지만  DMZ 연천의 거점 문화공간, 아트하우스가 될 예정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의 출발에 앞서 내가 만난 여름밤 연천의 이 공간을 기록해둔다.


공간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던 전시와,

과거를 만날 수 있었던 아카이브를 보며-


 공간에서 시대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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