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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의 Don’t Stop Me Now

by 정흐름




어린이집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교육자들은 아이들이 사용한 놀이기구를 정리하고 바닥을 쓸며 하루의 끝을 준비한다. 아직 아이들 몇몇이 남아 부모를 기다리며 놀고 있고, 교육자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공간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중이다. 모두의 얼굴에 하루의 피곤함이 묻어나지만, 일과 교육의 책임감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게 한다. 묵묵하고도 분주한 움직임 속에 공기가 무겁다.


그때, 교육자 중 한 명인 '래빗'이 갑자기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로 높인다. 곧, 퀸(Queen)의 ‘Don't Stop Me Now’가 울려 퍼진다.


"Tonight I'm gonna have myself a real good time~♪오늘 밤 난 정말 신나게 즐길 거예요."


원래 정리 시간에는 조용한 정리 동요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건 전혀 예상 밖의 선곡이다. 게다가 래빗은 방금 정리해 넣은 탬버린까지 꺼내 흔들며 정돈된 테이블 위를 겅충겅충 뛰어다니고 있다. 테이블보가 스르륵 밀려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름에 걸맞도록 커다란 토끼 한 마리가 어린이집을 누비는 모양새이다.


교육자들이 깜짝 놀라 서서 래빗을 바라본다. 몇몇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고단한 이는 애써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I'm a shooting star leaping through the sky~! 난 하늘을 가르는 유성이랍니다."


가사에 맞춰 공기를 가르는 래빗을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둘씩 래빗을 따라 댄스 행렬을 만든다. 작은 발들이 통통 튀며 리듬을 타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다 비틀대며 쓰러지기도 한다. 아이들끼리 부딪히고 바닥에 뒹굴어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래빗은 어느새 한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아이의 손을 마이크 삼아 열창을 이어간다.


"There's no stopping me~! I'm burnin' through the sky, yeah~! 나를 멈출 수는 없을 거예요. 난 하늘을 활활 가르고 있어요. 앗싸!"


아이들의 에너지가 폭발한다. 해 지는 센터 안에 환한 미소로 밝아지는 작은 콘서트 장이 열린다.


반면, 몇몇 교육자들의 입에서 “바쁜데 대체 뭐 하는 거지?”라는 불만이 터진다. 이해할만하다. 우리는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하지만 몇몇은 음악을 흥얼거리고,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며 장단을 맞춘다. 잠시 손을 놓고 어깨춤을 추기도 한다. 래빗의 흥겨운 에너지가 간질이는 곳이 있는 것이다. 간지럼을 타는 이들이 깔깔 웃을 수 있다.


"Don't stop me now~! 'Cause I'm having a good time~! 날 말리지 말아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나 역시도 바쁜 중에 콘서트를 연신 돌아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정리할 시간에 춤을 추는 이 광경이 교육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호주의 유아교육 정책은 놀이 기반 학습을 강조한다.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사회적 기술을 배운다. 래빗의 행동은 비록 이 시간에 보일 전통적인 교육자의 모습은 아니지만, 놀이를 통해 즉흥적으로 아이들과 교감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다. 물론 그것으로 본인을 표현하고 감정도 조절하는 롤모델이 되고도 있을 것.


"I am a rocket ship on my way to Mars~! 난 화성으로 가는 로켓예요."


마치 우주로 날아갈 듯 신나게 점프하며 깔깔거리는 래빗과 아이들. 음. 교육적 의미 너머에 분명히 더 강한 무지갯빛 스피릿이 뿜어 나오고 있는 걸 본다. 뭘까?


"I'm having a good time, having a good time~!"


아, '신남'이구나!

삶을 즐기는 태도, 삶의 즐거움이 단순하고도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거구나. (아, 나는 교육자라는 틀에 박혀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 중심 가치와 힘이 나중으로는 도저히 미룰 수 없도록 생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고 전염시키는 것이구나.


"Like a tiger defying the laws of gravity~! 중력을 거스르는 호랑이 처럼."


래빗과 아이들 사이에서, 정리해야 할 공간과 퇴근을 기다리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삶의 소리, 생명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다.


"Don't stop me now~!"


생명이 내게 속삭인다. 즐거움을 막지 말라고. 즐거움은 딴 데 있지 않고 바로 여기 있다고.

그래, 교육자로서 아이들에게 일, 질서와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부지런히 맡은 바 일을 앞세우는 것을 현실이라 하지만, 표정과 행동, 의도에 영혼 없음은 아이들도 알아본다. 때로는 세상이 중요하다 하는 것을 다 제치고 생의 본능을 따르는 것이 더 큰 삶의 가치를 보여줄 수도 있다. 래빗이 동료들에게 쓴소리 듣더라도 이 순간에 아이들에게(그리고 동료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증거해 주고 상기시켜주는 재치와 영혼이 있다면 그는 충분히 훌륭한 교육자이고, 동료이고, 생의 모습이다. 저리도 즐겁게 순수한 생명들이 공감하고 같이 울리고 있는 걸.

지금 생의 소중한 한 마디를 듣고 아이들이 춤추고 있다.


Don’t stop me now, cause I’m having a good time, having a good time!


미루지 말고 막지도 말라. 삶의 즐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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