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요, 집에서 하는 일이 없어요.

그럼 애들은 누가 키우나??

by 로지

“우리 엄마는요, 집에서 하는 일이 없어요.”


올해 9살이 된 첫째가 고자질하듯 자주 하는 말이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말이지만, 들여다보면 그만큼 효율적으로 살고 있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하다.


“청소는 무선 청소기로 아빠가 하고요,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랑 건조기가 하죠. 엄마는 맨날 공부만 해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학자인 줄 알겠다며 남편과 친정 엄마가 웃었다. 시어머니가 들으셨으면 아들만 부려먹는다며 관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지만, 친정 엄마는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만큼 중심을 잡고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좋았다고 하셨다.


harry-grout-n-b4wcNr4Jc-unsplash.jpg

Photo by Harry Grout on Unsplash


제일 하기 싫은 일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설거지를 꼽는다. 그나마 요즘은 설거지하는 시간에 유튜브를 듣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이 즐거워 지진 않는다.


몸이 조금 안 좋던 어느 날. 설거지를 해야 한다며 싱크대 앞에서 서 있는 내 모습이 꽤나 안쓰러워 보였는지 남편이 식기세척기를 주문했다. 좁은 주방에 식기세척기 자리를 만드느라 이틀을 분주히 움직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편해진다고 이 시간에 쉬는 게 더 낫겠군.’ 정리하는 과정이 더 번거롭게 한다며 불평을 했다. (미리 말하지만 그때 불평한 나를 말렸어야 했다! )


생각보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자리를 비운 지 한 달 만에 식기세척기가 들어왔다. 사용 두 번만에 나는 식기세척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고작해야 작은 식기 세척하는 10~20분 정도를 줄여주지 않겠냐고 예상했었던 것과 다르게 설거지 및 식기 정리 시간이 30분 이상 줄어들었다. 주방에 서 있는 시간이 완전히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많은 집은 자잘한 설거지들이 엄청나게 나온다.(한 끼에 나오는 설거지 양이라는 사진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끝내면 커피 한 잔 마시고 바로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점심 먹은 설거지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간식을 찾는다. 식기세척기의 도움을 받으면 커피 한 잔에 책 한 페이지 읽을 정도의 여유는 생긴다.

무엇보다 지금 설거지를 미뤄도 누군가 해 준다는 심리적 여유가 주는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엄마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이 심리적 여유도 무척 중요하다.


예전엔 아이들이 바닥에 무언가를 쏟으면 손으로 닦아야 했다. 쏟은 게 물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보통은 주스, 우유, 초콜릿 과자 등 한 번에 깨끗하게 닦기 힘든 것들이 바닥을 더럽힌다. 몸이 힘들고 여유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기면 자동 반사처럼 화를 내게 된다.


“엄마가 조심히 먹으라 했지!!!!!!!”


무선 물걸레 청소기가 생기면서 아이들이 집 안을 더럽히는 걸로 화내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우유를 쏟아도(유지방이 있어서 잘 안 닦이고 냄새가 심하다) 아이만 달랑 들어 화장실에 넣어 씻기고는 물걸레질을 하면 된다. 무선 청소기만 해도 이렇게 편한데 똑똑한 로봇청소기 면 더욱 편리할 것이다.

간식을 먹으면서 그릇이며 포크며 보이는 만큼 꺼내도 스스로 꺼내 먹는 게 기특하다며 웃을 수 있다. 그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할 테니.


막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물놀이다. 잠시 아이가 조용하다 싶으면 어느새 화장실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덕분에 집에 있어도 하루에 옷을 서너 벌씩 갈아입는다. 괜찮다. 세탁기에 넣고 건조기로 돌리면 똑같은 옷을 저녁이면 입을 수 있다.


너무 기계만 예찬한 것 같으니 다른 이야기도 좀 해보자.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요즘은 도우미를 요청하는 방법이 많다. 물론 어떤 사람이 오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운이 좋다면(대게는 운이 좋다) 아이와도 친숙하게 지내면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을 만날 수 있다. 산후 도우미로 만나보니 반찬 솜씨도 좋고 아이와도 잘 지내신다면 계속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정리가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정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 무엇이 되었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바란다.


다른 건 다 할 수 있겠는데 매 끼니 어른 반찬, 아이 반찬을 장만하는 게 스트레스라면 솜씨 좋은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반찬 가게를 찾아보자. 지역 카페나 맘 카페에 건강하게 맛 좋은 반찬 가게가 많이 공유되어 있다. 상업적 글이 많아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가까운 곳에 들러 조금씩 먹어보자.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맛있는 곳도 많다. 요즘은 반찬도 정기 배송 서비스를 하는 곳도 많으니 밑반찬뿐만 아니라 국이나 찌개, 스페셜 메뉴도 받아볼 수 있다.


늦게 주문을 하거나 시기를 맞추지 못해 당장 저녁 반찬이 없다면 밀키트를 이용해도 괜찮다. 나의 경우 웬만한 메뉴는 만들어 먹는 편이긴 하지만 매 끼니에 간식까지 챙기기 버거울 땐 주로 아이들 간식에 밀키트를 이용한다. 파스타는 면을 삶을 필요가 없이 나오니 라면보다 빠르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에너지를 모르는 사람은 저렇게까지 도움을 받으면 엄마가 하는 일이 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딸처럼 말이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도 손이 모자라고 여유를 찾기 힘든 직업이 엄마다. 그리고 저렇게 도움을 받아도 다 엄마 손이 한 번씩은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혼자 이 모든 일을 짊어지고 해내려고 하면 몸도 마음도 부서지고 만다.


무엇보다 도움받을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고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안아달라 놀아달라 관심을 쏟아달라 졸라댄다. 5분도 걸리지 않는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복달이다. 엄마가 여유를 가지면 잠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하려고 했던 일을 하면 된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요구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있냐는 데에 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길 바란다.

아이는 자란다. 지금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사랑도 시기를 놓치면 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때를 놓치고 후회하기보단 시기적절한 사랑을 듬뿍 표현해 주는 쪽을 택하자. 도움을 받는 만큼 더 적절하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이 셋 엄마의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