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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l 24. 2021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다시 읽었다. 정확히는 2009년에 처음 읽었으니, 12년 만에 재독하게 된 셈이다. 굉장히 열광하면서 읽었다는 기억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당황스러움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그리 분량이 많은 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독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이 제일 큰 이유이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 아닌 이유도 있었다. 


이 책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보통씨는 별 것 아닌 사랑 이야기를 왜 이렇게 어렵고 난해한 철학적 개념들을 가져와서 썼을까? 사랑은 원래 이렇게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고 어려워서 빠져드는 것일까? 나는 왜 12년 전에는 이 책이 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을까? 질문과 고민만 하던 중에 새롭게 시작하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홍보 영상을 봤다. 순간, 책과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수많은 프로그램이 생기고 종영하기를 반복하지만 빠지지 않는 장르 중 하나가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은 왜 남들의 연애에 관심을 가질까? 내가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타인의 사랑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다음회를 기다린다. 

'1번 남자는 1번 여자가 좋은 거야? 2번 여자가 좋은 거야?' 그 남자가 1번 여자와 2번 여자 중 누구를 선택하는지는 내 사랑에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남자가 1번 여자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2번 여자에게 말한다. '아니, 그 남자 말고 너만 바라보는 저 남자를 봐. 1번 남자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야. 그런 남자 만나면 힘들어. 성실하고 올곧은 저런 남자를 만나야 해.'이러면서 말이다.

여기에 감정 이입을 하는 '나'의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에 썸을 타던 남자와 정리했다. 그 사실을 알고 회사 동료가 위로해 준답시고 술을 마시자고 하더니 오래전부터 내게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님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안중에도 없던 동료였지만 이후로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이런 내가 좀 뻔뻔하게 느껴져서 싫었는데, 2번 여자를 보니까 그게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2번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회사 동료의 마음을 받아줘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종류의 시나리오를 무궁무진하게 쓸 수 있는 것이 리얼 연애 프로그램의 맛이다. 


우리는 타인의 연애에서 내 사랑의 해설판을 찾는다. '어머! 저건 그 남자가 했던 행동인데! 저런 마음이었군.' 이런 식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완벽하지 않은 나와 너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 말로 낭만주의이고 진정한 사랑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사랑이 교육받아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그걸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사랑을 해보면 나와 너, 우리 모두 사랑을 하는데 미숙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배우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랑에서 힌트를 찾게 된다. 내가 무슨 잘못했는지, 그때 너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를 다른 사람의 연애를 보면서 곱씹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는 사랑받길 원하고 누군갈 사랑하기 바라면서, 이 사랑이 영원히 행복하게 이어지길 소망한다. 이런 소망이 간절한 이유는 그만큼 사랑이 불안정하고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결혼한 사람 중 이미 75%는 이혼을 경험했고, 20%는 이혼을 했으면 하고 바란다. 겨우 3% 정도만 완벽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신도 불안정하고 신뢰하기 힘든 두 존재가 하는 사랑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믿기 어려울 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서 사랑은 아프고 힘들고 버겁고 상처만 남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 사랑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내가 너무 싫었다. 그러면서도 또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한심했다. 사랑한다면서 상처를 주고,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을 괴롭히고, 사랑해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나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 한심한 짓이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배우는 마음으로 읽은 책 중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있었다.


12년 전에는 사랑에 빠진 책 속 인물들의 이상하지만 솔직한 모습에 빠졌다. 마치 작가가 나를 보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등장인물의 말과 생각 곳곳에서 내 모습을 찾았다. 누구나 사랑하면 불안과 혼란 속에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은 나의 연애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리얼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이었다. '사랑은 원래 혼란스러운 거야.' '사랑하면서 괴팍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야.' '나의 속마음은 이거군.' 책 속에서 내 사랑의 해설판을 찾았다고 여겼다.


이 책은 별다른 사건 사고가 없는, 지루할 만큼 별 것 없는 스토리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작가와 사랑에 빠진 기분으로 읽고, 어떤 사람은 어려워서 읽을 수가 없다고 할 만큼 반응이 무척 다르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고 생각해보았는지에 따라 책을 읽고 느끼는 방향이 무척 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안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궁금하다면,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더불어 사랑의 불안정한 속성만 보지 말고 좀 더 단단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해설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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