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비 오는 날은 부침개지!"
꼴랑 자동차가 더러워질 만큼 내린 비에도 핑계를 대며 무슨 부침개를 할까 즐거운 고민이 시작됐다. 아이와 같이 들른 마트에 물 좋은 생물 오징어가 들어왔길래 얼씨구나하고 쪽파도 한 단 구입했다. '배고프다.' 퇴근 전 남편의 문자를 보고 서둘러 파를 손질하고 오징어와 새우를 준비해 둔다. 버스에서 내렸다는 톡을 신호로 무쇠 팬에 기름을 두른다. 묽은 밀가루 반죽에 손질한 잔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달군 팬위에 한 국자 떠 넣는다. 파만큼 두껍게 썰어둔 오징어와 새우를 올린다. 맛도 색도 좋게 계란물을 한 바퀴 두르고 고명처럼 썰어놓은 고추도 몇 개 올린다. 치직치직 맛있는 소리와 함께 부침개가 익어간다.
"밥 먹자."
시간 맞춰해 둔 돌솥에서 고슬고슬 밥 한 공기씩 떠올려 각자 앞에 놓아둔다. 파전을 잘라 아이들 식판에 놓는 건 남편 몫이다. "따뜻할 때 당신도 한 입 먹어." 남편이 챙겨준 부침개 한 입을 먹어보니 간도 알맞게 잘 된 듯하다. 신이 나서 무쇠 팬에 다음 부침개를 뒤집는다.
유독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이다. 중화요리 같은 기름이 흥건한 요리보다는 기름 두른 팬에 튀기듯 구운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신혼초 제일 먼저 구입한 주방용품이 무쇠솥과 무쇠 팬이었다. 관리가 까다롭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할 만하다. 맛있게 먹으려면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덕분에 일 년 내내 집에서 기름 냄새가 끊이질 않는다. 치킨, 새우튀김, 돈가스, 부침개, 치즈스틱 등등 기름에 튀기거나 굽는 것들은 가족 모두가 즐기는 메뉴다.
기름에 튀기듯 굽는 것들 이야기를 하니 도시락 반찬이 생각난다. 요즘 아이들은 모를 이야기겠지만 나는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시대에 살았다. 엄마는 한 번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챙겨주셨다. 아침에 소시지를 먹으면 점심 도시락에도 같은 소시지가 들어있다. 따로 메뉴가 있지 않는 이상 저녁 도시락도 반찬은 동일하다. 하루에 세 끼를 계속 같은 밥, 국, 반찬으로 먹는 셈이다. 한창 잘 먹어야 하는 시기에 가혹한 일이라며 엄마는 고3 시절 1년 동안 저녁 도시락을 따로 배달해 주셨다.
오후 자율학습이 마치는 종이 울리면 교문을 향해 냅다 뛰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같은 자리에 엄마가 저녁 도시락을 들고 서 계셨다. 매일 시간에 맞춰 따끈한 밥과 국, 반찬을 담은 커다란 도시락 보따리를 건네주시면서 꼭꼭 씹어 천천히 많이 먹으라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계셨다. 그 시절엔 점심 시간, 저녁 시간은 놀거나 자는 시간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저녁 시간에 꼭 저녁 도시락을 먹었다. 왜냐하면 엄마가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며 넉넉하게 반찬을 넣어주셨기 때문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반찬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생선 튀김이다. 아직 열기가 채 식지도 않았다. 눅눅해진다며 뚜껑도 덮지 않고 제일 위칸에 놓여 살짝 보자기로만 덮어놓은 튀김은 인기 만점이다. 학교에서는 생선 가시를 발라먹기 힘드니 갈치를 한 장 한 장 살만 발라 포를 떠서 밑간을 한다. 밀가루나 튀김가루를 살짝 묻히고 튀김옷을 두껍지 않게 한 겹 입혀 튀기듯 굽는다. 채반에 올려 기름을 빼내어 바삭함을 더한 튀김은 식기 전에 도시락에 넣어져 내 손에 들려 교실까지 입성했다. 그런 날은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밥에 그냥 생선 튀김이면 그냥 신이 난다.
엄마의 저녁 도시락에는 늘 과일도 함께 들어있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으면 과일 먹을 일이 없지 않으냐며 매일 다양한 계절 과일을 챙겨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짧았던 저녁 시간(40분) 동안 디저트까지 먹느라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먹고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몰래 나가 양치질을 했다.
혼자 살면서부터 아침을 건너뛰었다. 천운으로 아침 안 먹는 남편과 사는 덕에 8년 동안 아침밥을 차려본 적이 없다. 오늘 처음으로 아이가 9시까지 등교를 했다. 4시간이나 있다가 와야 하니 아침은 필수다. 오죽하면 가정통신문에 꼭꼭 아침을 먹여보내달라는 당부가 있을 정도다. 어제 아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오징어국을 끓이고 어묵에 야채를 넣어 볶았다. 만들어둔 멸치볶음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밥을 담아 상을 차리면서 먹기도 전에 아이를 닦달했다. "얼른 먹어. 늦었어."
마음만 왜 이리도 바쁜지. 원래도 먹는 속도가 느린 아이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닦달당하며 먹는 아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보내고 나니 미안했다. 늘 부족한 엄마다.
아니나 다를까. 하교 후 만나자마자 처음으로 하는 말이 "엄마, 나빠. 미워."다. 아침에 엄마가 혼을 내서 기분이 많이 안 좋았다는 거다.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맞췄다. "미안해. 엄마가 아침에 마음이 많이 바빴어. 정해진 시간까지 다 먹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늦을까 봐 그랬어. 엄마도 처음이라 그래. 미안해."
진심이 통한 걸까? 웬일로 쉽게 용서를 해 준다. 어느새 아이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통통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시락 들고 뛰어가던 나를 보는 엄마 마음이 이랬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떻게 20년 동안 매일 아침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줬지?' 아이를 키워봐야 철이 든다는 말이 맞다.
지금도 고등학교 동창들은 만나면 엄마의 저녁 도시락 이야기를 한다. 당시에도 감사하게 생각했었고, 우리 엄마 참 대단하신 분이다 했지만, 이토록 고민되고 애 쓰이는 일인 줄은 미처 몰랐다. 고작 아침 밥상 한 번에 말이다.
딸아. 급식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라. 엄마는 외할머니처럼은 못 할 것 같구나. 받은 만큼 못해줘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