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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앤 Nov 14. 2022

친정아버지와 김장배추

다경앤 가족

김장철이 다가온다. 매년 이맘때면 배추와 함께 친정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래도 배추가 맛있는 거잫아" 하시면서 배추 들고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다.




결혼 후 양쪽 집안 어른들이 해주시는 김치를 먹다가 김장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혼자 해보자 결심한 해였다. 시댁이 지방이라서 김장을 하러 가는 것이 힘들었다.

친정에서 올케들이랑 같이 하는 것도 힘들었다.

살림에 조금 자신이 붙기 시작하면서 김장도 한번 해보자 하고 도전하게 되었다.


배추는 친정아버지가 구해주신다고 하셨다. 맛있는 배추 밭을 알아뒀다고 하셨다.

그해는 배추값이 폭락한 해였다. 그때만 해도 배추 한 포기에 천 원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배추값이 폭락하면서 점점 내려갔다.

어느 순간 500원 선도 무너졌다.

뉴스에서는 배추밭을 그냥 엎어버리는 영상보도가 계속 나왔다.

배추를 수확하는 인건비도 건질 수 없는 농부들이 그냥 배추밭을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친정아버지가 예약해 뒀다는 밭주인도 수확을 포기했다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배추가 200원까지 내려갔다.

도매하는 농수산물 물류센터가 아닌 일반 마트에서 200원에 팔리고 있었다.

그래도 팔리지 않아서 마트에서는 세일을 많이 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배추를 덤으로 그냥 주기까지 했다.


다경앤은 친정아버지의 연락만 기다렸다.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하시던 친정아버지의 연락이 왔다.

주말에 신랑이랑 같이 배추밭에 배추를 가지러 가자고 하셨다.

배추밭을 엎는다는 연락을 받으신 친정아버지는 배추가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광활한 배추밭에 도착해 보니 친정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너무도 튼실하게 잘 익은 배추였다.

초록 연두 하얀색의 배추가 일렬로 쭈욱 물결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배추를 수확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배추가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배추는 쉽게 뽑을 수 없었다.

배추를 수확하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먼저 배추를 옆으로 밀어 밑동이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칼로 밑동을 잘라야 한다. 튼실한 배추는 밑동도 커서 칼로 잘 잘라지지 않았다. 해맑게 웃으면서 따라나섰던 신랑도 점점 얼굴이 어두워졌다. 점점 말이 없어졌다.

장인어른이 아니었으면 벌써 도망갔을 것이다.


결국 배추가 신랑의 애마인 자동차에 실리는 순간 신랑은 표정 관리하는 걸 포기했다. 트럭을 빌려서 갔기 때문에 우리 차에도 배추를 실을 줄 몰랐던 것이다.

친정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배추를 한 포기라도 건지고 싶어 하셨다.

친정아버지는 사위가 차를 엄청 아낀다는 걸 알고 계셨다.

신문지를 겹겹이 트렁크에 깔아 주셨다.

하지만, 서툰 손길에 수확된 배추는 흙을 엄청 떨어뜨렸다.

다경앤도 양쪽 남자 비위 맞추느라 점점 지쳐갔다.

마트에서 사면 집 앞까지 배달도 해주고 적당히 다듬어져 있어서 손질하기도 쉬울 텐데.. 점점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 짜증은 배추 한 포기에 500원씩 계산해서 주시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극대치로 올라갔다.



배추 밭주인은 내일 갈아엎을 배추들 때문인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렇게라도 배추를 구해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셨다.


그때는 그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친정아버지에게 힘든 배추 수확에 비싼 배추값에 투정만 부렸다.

깜깜한 밤에 집에 도착해서 우리 차에 실었던 배추를 내리고 있으니 친정아버지도 도착하셨다.  친정아버지도 트럭 가득 배추를 싣고 오셨다.

친정 김장 배추에 친정 언니네도 갖다 줄 것이고 이곳저곳 나눠 줄곳이 많다고 하셨다.

그래도 다 실지 못한 배추밭의 배추를 계속 안타까워하셨다.

배추밭의 배추를 나눠주면 좋아하실 사람들 생각에 더 많이 실지 못해 안타까워하셨다.



200원에 살 수 있는 배추를 직접 밭에 가서 수확하고 실어오고 500원에 샀다.

친정아버지는 트럭까지 빌리셨으니 500원이 아닌 것이다.

우리 집에 트럭의 배추도 더 내려주시면서, 이렇게 투덜거리는 딸에게

친정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배추가 맛있는 거잖아."

그 순간 거짓말처럼 속상했던 마음이 쏴~~ 내려갔다.




하루 종일 배추 수확의 노곤함도

내일 다듬을 배추 걱정도

항상 이렇게 남을 먼저 생각하는 친정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없어졌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인지 모르겠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시던 친정아버지였다.

그래도 하루 종일 배추 수확한 딸이 다시 배추 다듬느라고 고생해야 하니 걱정되셨던 걸까?

속상해할 딸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맘을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셨을까?

철없는 딸이 남을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을까?

친정아버지의 그 순간의 미소와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위안받는 뭔가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의 친정아버지 모습을 떠올릴 때가 있다.

너무 힘들 때 친정아버지의 이 웃음과 목소리를 생각하면 힘이 났다.

'그래 우리 딸은 결국 해낼 거니까'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뭔가 손해 보는 거 같아 투덜거리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들려왔다.

'그래도 우리 딸은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니까!'라는 목소리가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러면 그때 느꼈던 쏴~~~~ 내려가는 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 대한 배려는 받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베푸는 사람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감동을 주는 거 같다.

그걸 친정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실천함으로 가르쳐준 게 아닌가 싶다.

아마 친정아버지는 본인의 행동이 이렇게 딸에게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준 것인지도 모르실 거 같다.




시댁 친정 양쪽 집에서 김장김치를 얻어먹던 다경앤은

이제 양쪽 어른들께 김장을 해드리고 있다.

김장을 준비하면서 배추와 함께 떠오른 친정아버지의 추억 덕분에

잠시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다.

올해 김장도 친정아버지김장배추 추억과 함께 즐겁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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