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열성경련과 응급실
2021년 12월.
13개월에 맞추어 폐구균 예방접종을 하고, 다음 날 오후부터 중간중간 미열이 있었다. 다행히 해열제를 먹이면 금세 내렸고, 평소처럼 잘 먹고 잘 놀았다. 그래서 안심했다. 그날 밤까지는.
저녁부터 뭔가 달랐다. 아이는 내 팔을 꼭 끌어안고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팔베개를 해주며 재우는데, 조금 뜨겁다 싶어 해열제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을 한 모금 먹이고 약을 준비하는 순간. 내 품 안에서 아이는 경련을 시작했다.
그때서야 알았다. 이것이 열성경련이구나. 6개월에서 6세 사이 아이들이 38도 이상의 고열로 겪는 증상. 의식을 잃고 눈이 풀리며 몸이 경직되고 손발이 떨리는 모습. 순간 당황했지만, 잠들어 있던 남편을 깨워 119에 전화를 부탁했다. "일단 평평한 바닥에 베개 없이 눕히고, 주무르지 말고 가만히 두세요." 응급상담원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 순간의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이어서 영상을 찍어 나중에 의사선생님께 보여드리고, 경련이 멈추고 눈을 마주치고 울기 시작하면 그때 달래주라고 했다. 그런데 정신이 없었다. 내 손은 아이를 안고 있었고, 영상을 촬영하라고 하는데 내 휴대폰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휴대폰은 통화 중이었는데 통화 중에 영상을 켜려니 연결이 잘 안됐다. 정신이 돌아올 쯤 겨우 조금 촬영이 되었다.
초점이 없는 눈에 안고 있던 자세 때문인지 한쪽 손은 올리고 약간 굳은 자세에 딸꾹질 하듯 몸이 경련이 일어났다. 그래도 곧 경련은 멈췄고 멍하니 있는 아이가 울기만을 기다렸다. 1분여의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 열성경련이 시작되면 기억해야 할 것들
*아이를 평평한 바닥에 눕힌다 (베개 없이)
*구토를 하면 고개만 옆으로 돌려준다
*경련 중엔 주무르거나 잡거나 소리치지 말고, 그냥 지켜보며 영상으로 기록한다
*경련이 멈추고 눈이 돌아오면 그때 아이를 달랜다
(병원에 가면 증상과 경련 시간을 설명해야 하는데, 경련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고 경황이 없다 보니 영상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아이가 막 울기 직전 119 구급대원분들이 오셔서 체온을 재고 상황을 확인한 후 침상이 있는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입원 가능한 병원이 없습니다."
"고열 아기는 격리 가능한 병원으로만 이송 가능합니다."
코로나 시기, 열이 난 아기는 더 멀고 더 조심스러운 길을 가야 했다. 보호자는 1명만 동행할 수 있고,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더 먼 곳까지 가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안고 가는데, 침대가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손잡이를 꽉 잡고 아이를 꼭 안았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또 다른 난관. 아이를 안고 있던 내 체온도 높게 나와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보호자가 와야 하는데 40~50분 걸린다고 하니 일단 소아과 선생님이 오시면 아기만 먼저 코로나 검사 후 들어갈 거라고 하셨다. 뜨거운 아이가 귀옆에 머리를 대고 안겨있었으니 내 귀에도 열감이 전해진 거였다. 망할 놈의 열...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없이... 아이만 들어간다니... 막막하고 불안했다.
다행히 의사선생님이 나오시고 코로나 검사 후에 보호자 체온을 다시 재주셨고 정상 체온으로 확인되어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응급실 한켠 심폐소생실. 아이를 안고 배정받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생각했다. '돌치레를 이렇게 하는 건가...'
낯설음도 잠시 의사선생님이 오시고 다시 상황설명을 듣고 해열제를 먹이고 추가 검사를 받으며 7시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엑스레이, 혈액검사, 소변검사, 수액... 아이의 작은 손에 바늘을 꽂는 것도 쉽지 않았고, 아이는 아파서 울었다. 그래도 그 사이 많이 울어서 지쳤는지 곧 잠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 번 오늘 일을 생각해보니 조금씩 차분해졌다. 조금 더 침착하게 잘 말할걸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했다며 혼자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열성경련인 것 같아, 검색해! 아 아니!! 119에 전화해!"라고 했으니 말이다. 검색부터 하려는 습관이 참 무서웠다.
열성경련이 빨리 멈춰서 다행이고, 구급대원분들도 간호사 선생님도 너무 친절하셔서 참 감사했다. 빨리 7시가 되어 '그냥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열성경련인 걸로... 이제는 괜찮아진 걸로 결과를 듣고'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추가 경련은 없었고, 열도 내려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는... 119를 부를 일도... 응급실에 올 일도 없길... 바래본다.
그러나..
2022년 10월 9일 새벽.
다시는 응급실에 가고 싶지 않았는데, 연휴에 또 열성경련이 왔다.
새벽 3시쯤 아이를 안았는데 뜨거워서 급히 체온을 쟀다. 39.3도. 해열제를 먹이고 기다렸지만 두 시간 후에도 39.0도 여전히 고열에 해열제 교차복용을 하려는데... 싫다며 경기하듯이 약을 거부해서 조금 더 지켜보자고 재웠다. 또 두 시간 후에도 38.9도 여전히 높은 열에 자는 남편을 깨워서 약을 안 먹겠다는 아이를 잡고 억지로 해열제를 먹이고... 서로 진이 빠져서 누웠다.
안쓰러운 맘에 자는 아이를 안으려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침착했다. 불을 켜고 남편을 부르며 아이를 눕히고 영상 촬영을 시작하며 기도를 확보했다. 짧은 경련이 끝나고 구토 후 조금씩 의식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고열이었다.
잠시 진정시키고 토한 것도 씻길 겸 미온수에 담갔다. 열은 조금씩 내려가는 듯했지만 한쪽 팔을 올리고 경련을 했는데, 그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 같아 119에 전화했다. 크게 문제가 없다면 아침에 소아과를 가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119 의료상담을 신청했는데, 두 번째이기도 하고 한쪽 팔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 같다면 응급실을 추천하며 구급차를 불러주셨다.
그런데 40도 고열의 아이를 귀옆에 머리를 대고 안고 있으니 응급실에 도착하면 보호자인 나도 열이 높게 나온다는 게 문제... 지난번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재고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규정이 더 까다로워서 열이 있는 보호자는 환자와 함께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다행히 집이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남편에게 지난번 경련 날짜, 이번 경련 동영상, 시간별 체온과 약 복용 기록을 모두 메시지로 보내고 이어 도착한 남편과 함께 아이를 들여보낸 후 밖에서 기다렸다. 곧 이어 안에 들어간 남편의 전화에 의사선생님께 상황을 한 번 더 설명하고 기다리라는 말에 멍하니 병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잠시 비 오는 병원을 걸으며 방황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불이 밝혀진 본관 건물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시간이 지나고 진단은 크룹(급성 폐쇄성 후두염). 다행히 경련 시간이 짧고 이상 소견은 없어서 추가 검사 없이 지켜보기로 했다. 이렇게 두 번째 열성경련도 마무리가 되었다. 비 오는 휴일 아침이 참 길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열성경련은 흔하다"고. "대부분 괜찮다"고... 하지만 그 흔한 일이, 우리 집 작은 아이에게 일어났을 때 세상이 얼마나 조용하고 느려지는지, 그리고 부모 마음이 얼마나 무너지는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해열제를 미리 먹인다고 해서 열성경련을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열제는 고열에 탈수가 생기거나 너무 힘들어하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일 뿐. 혹시라도 더 빨리 해열제를 먹일걸, 더 빨리 챙겨줄걸 하는 자책은 하지 말자.
열성경련은 일반적인 일이라고들 하지만, 막상 겪으면 당황하게 된다. 그래도 우린 부모니까,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해야 한다. 마흔에 엄마가 되어 모든 것이 서툴지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배워간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남긴다. 누군가 오늘 밤 처음으로 아이의 열을 마주하고 있다면, 당황하지 않고 이 한 줄을 떠올릴 수 있기를.
� 약을 거부하는 아이를 위해 작은 조언 하나
약을 거부하는 아이를 위해 좌약 해열제도 상비약으로 준비해두세요. 열이 나는데 해열제를 거부하니 정말 답답하더라구요. 처음 응급실에 갔을 때도 잘 안 먹어서 그땐 좌약 해열제를 투여해주셨었어요. 약을 잘 안 먹는 아이를 위해서는 좌약 해열제도 상비약으로 구비해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단, 좌약 해열제는 물약보다 효과가 조금 느리다고 하고 자주 넣으면 좋지는 않다고 해서 요즘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고 해요. 그래도 정말 급한 경우 사용용도로 좌약 해열제 - 하나쯤 구비해두시는 것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