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방항공 면접기 3

by 하늘을 걷는 여자

마지막 4차 면접 날이 밝았다.


일찌감치 면접장에 도착하여 배부하는 명찰을 왼쪽 가슴께에 부착했다. 이게 정말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오늘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된다.


4차 면접은 3차 면접과 동일한 방식을 시작되었다. 바닥에 붙여진 라인에 따라 나란히 선 상태에서 사진을 찍은 후, 면접장을 'ㄹ'자로 크게 워킹했다. 마지막 면접자까지 정해진 위치에 바르게 서고 나자 면접관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희가 간단한 게임을 준비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구호에 반대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right side'라고 하면 왼쪽으로 돌고 'left hand'라고 하면 오른손을 들어 올리시면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뭐 이런 신선한 면접방식이 다 있나 싶지만 당시의 나는 당연히 죽기 살기로 게임에 임했다. 간단한 게임에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우로 돌아! 왼손 들어! 좌우반전 영어게임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자 다시금 질문의 시간이 돌아왔다. 이번 면접은 이전과 달리 질문이 있는 면접관들이 개별 면접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이었다.

입꼬리를 자연스레 끌어올리고 면접관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살폈다. 면접관은 수가 많다 못해 의자를 두 줄로 놓고 앉아있을 지경이었다. 면접관의 대부분이 5-60대로 보이는 중국인이었는데 이들은 면접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서로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원자들의 답변과 면접관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면접은 계속되었다. 부산스러운 와중에도 끊임없이 미소를 띠며 면접관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게 질문해주세요, 나를 궁금해해 주세요' 하는 바람을 눈빛에 가득 담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개별 질문을 받지 못했다. 면접장에 함께 들어갔던 7명의 지원자 중 3명만이 개별 질문을 받았다. "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고 면접을 마무리 짓는 면접관의 한 마디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드려도 되겠습니까?"하고 패기 있게 나서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최종 면접의 경우, 결과가 당일에 발표된다. 지원자들은 회사 근처를 전전하며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면접에 함께 지원했던 절친한 언니와 회사 1층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동동 대며 면접 결과를 기다렸다. 생애 가장 더딘 한 시간 반이 흘렀다. 면접관 한 분이 1층으로 내려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지원자들을 향해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건물층에 내리면 바로 보이는 벽에 '탈락자' 명단을 붙여두었습니다. 해당 명단에 본인의 이름이 없으면 합격입니다."


탈락자 명단을 붙여두었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탈락자가 몇 안 되는구나 싶었지만 마냥 안도할 순 없었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닌 법. 내 눈으로 결과를 확인해야만 한다. 앞 다투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함께 온 언니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회사층에 엘리베이터 멈춰 서길 기다렸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지원자들이 벽보를 향해 우루루 쏟아져 나갔다. 간절한 마음만은 모두가 매한가지였으리라. 꽁지발을 들고 서성이다 비로소 검은 뒤통수의 바다를 비집고 벽보 앞으로 나아갔다. 약 열댓 명가량의 이름이 게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어깨너머 탈락자 명단을 차례로 읽어 내려갔다. 끝까지 훑어보았으나 내 이름은 없었다. 혹여 빠뜨린 게 아닐까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다시 한번 명단을 훑었다. 역시나 내 이름은 없었다. 합격의 기쁨이 그제야 서서히 몰려왔다. 한껏 고무되어 언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경직된 표정으로 벽보를 응시하고 있었다. 곧이어, 언니는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벽보를 가리켰다.



하자야, 저기 내 이름이 있는 것 같은데...
저거 내 이름, 맞지...?


하늘이시여, 어찌 이럴 수가. 손을 들어 가리킨 탈락자 명단 한 구석에는 잔인하게도, 그녀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이 열 개라도 '언니 이름이 맞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목적지가 눈 앞에 보이는 마지막 문턱에서 힘 없이 밀려난 이의 슬픔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슬픔은 순식간에 합격의 기쁨을 덮쳤다. 그제서야 주변 풍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이부터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악을 쓰며 복도에 주저앉아버린 이들까지. 걷잡을 수 없는 좌절이 기쁨마저도 짙게 물들였다. 간절한 마음만은 모두가 꼭 같았기에 이름도 모를 서로를 얼싸안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최종 합격자들은 강의실로 들어와 주세요."


이읔고 복도로 나온 면접 진행자의 멋쩍은 한 마디. 언니는 희미하게 '난 괜찮아' 하고 웃어 보인 뒤, 얼른 들어가 보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승무원 한 번 되어 보겠다고 동고동락하며 함께 버텨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홀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잔인한 합격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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