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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Nov 18. 2020

고맙다, 유니폼. 그립다, 유니폼.  

 아마 태생적으로 그랬지 싶다. 나는 외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다. 어떤 옷을 입어야 내가 예뻐 보이고 어떻게 머리를 해야 내게 어울릴지(교내 반대항 대회나 축제가 열려서 친구들이 너 나할 것 없이 열을 올릴 때를 제외하곤) 고민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도 머리는 걸거치지 않는 포니테일이 제일 좋았고 착장은 실용파 엄마의 안목이 그대로 반영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꼬마의 주요 관심사는 내일 친구들과 할 고무줄놀이 구상이나 디지몬 어드벤처 챙겨보기, 일기 쓰기 정도였던 듯하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던가, 세 살 성향도 여든까지 간다. 여전히 나는 외적인 것에 그닥 관심이 없다.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어버리는 게 제일 편하고 옷은 고르는 게 귀찮아 결국 제일 무난한 것으로 고르게 된다. 나중에야 머리 만지는 것에 관심이 좀 생겨 손재주 좋은 동기들에게 봉고데기 사용법을 배워보겠다고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었는지, 말도 마시라.

 이런 내게 있어 승무원이라는 직종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메리트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규격화되어있는 복장 및 화장 규정이다.


 출근을 할 때면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회사 규정 화장을 하고 계절에 맞는 유니폼을 집어 든다. 일반 회사에 근무하는 우리 언니가 출근 전 아침, 옷장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아, 오늘은 또 뭐 입지? 옷이 왜 이렇게 없어!" 하며 악을 쓰는 모습을 익히 봐왔던지라 착장이 규격화되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안다. 우리 회사 유니폼은 타 항공사들과 비교해봤을 때 실용적인 축에 속하는지라 더더욱 그렇다. 만약 내가 일반 회사를 다녔다면 아마 똑같은 바지에 똑같은 셔츠를 7장씩 사놓은 다음 매일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녔을지도. 유니폼의 존재에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유니폼을 마지막으로 입은 게 벌써 9개월 전이다. 스탠딩 옷걸이에 걸린 투명 정장 케이스. 그 속에 깔끔하게 다림질되어있는 유니폼이 유난히 눈에 밟힌다.  고민 없이 유니폼을 집어 입곤 출근 버스에 몸을 싣던 그 날이 오늘은 조금 그리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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