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인생책 쓰기 시리즈

그 남자와의 여행

by 김경화

어렸을 때는 여행도 마음껏 다녀보고 싶고 캐나다도 유럽도 가보고 싶은 들뜬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삶에 치이면서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사치라고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 중국의 대도시들을 거쳐가긴 했지만,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걸음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한국에 와서 어쩔 수 없이 구미에 오게 되었다. 어떤 아주머니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났다. 결혼이 어쩌면 삶에서의 도피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박하게 생기고 웃는 그 남자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남자는 32살, 나는 29살. 더 이상 따질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알았다. 뭐가 씌인 듯 만나서 한 달 만에 동거했고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이 성실한 것만 같아서, 앞으로 알아가면서 살기로 했다.

도박 아닌 도박으로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기로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제주도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제주도보다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신혼여행을 하고 싶었다.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에 정을 붙이고 이 나라를 알아가고 싶어서, 서해안 쪽으로부터 부모님이 계시는 거제도까지 해안선을 따라 3박4일 차로 여행하기로 했다.

제천, 태안, 전주 등을 지나며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밤에는 바닷가 옆 펜션에서 묵었고, 낮에는 이동하면서 볼거리들을 보았다. 때가 되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름대로 정말 행복했다. 이 사람 하나만 바라보면서 정말 앞으로는 행복할 일만 있을 것 같았다. 자식도 아들딸 생기는 대로 낳아가면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자고 약속했다. 가는 곳마다 손잡고 다니면서 즐겼다.

서해안 쪽으로 내려가면서 고속도로를 번갈아 가며 달렸고, 마지막에 외도에 이르렀다. 외도는 그 당시 한창 관광객이 많았고 예쁘게 다듬어져 있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사람도 많았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더 멋있었다. 비록 제주도는 아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제일 행복한 신혼여행을 했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으면서 즐겼다. 그렇게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 부모님을 뵈러 갔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신혼 초기는 행복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삶이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신혼 초기의 콩깍지는 벗겨져 나가고 삶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자녀들은 하나둘씩 생겼고, 한국 생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데 육아까지 겹쳐 삶이 점점 더 삐걱거렸다. 어른들과 함께 사는 삶도 쉽지 않았다. 고부 간의 갈등은 날로 심해졌고, 꿈꾸던 현처양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혼을 너무 서둘렀나 후회가 되었다.

아이 하나만 있어도 힘든데 아이는 그사이 3명으로 늘었고 모두 딸아이다. 정신없이 지나는 사이에 3명이나 건사하자니 더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서로가 지치고 멍들고, 그 가운데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다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렇게 세월이 벌써 결혼한 지19년이 되어간다. 부부 사이는 그동안 여러 번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냉냉하게 그저 그렇게 지나갔다.

최근에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그처럼 철없던 나를 남편이 데리고 사느라 참 애를 많이 먹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참고 견디고 버텨와 준 남편이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삶이란 그런가 보다. 그렇게 철없던 과정들을 거쳐가면서 지지고 볶고 싸워가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들어가면서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가 보다.

요즘은 나이 들고 그 멋있던 남편이 희끗해진 머리카락이며 굳어진 손가락이며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참 애썼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동안 고생했고 고맙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서 가슴이 짠하다.

'여보,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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