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쓰는 요양보호사입니다

요양보호사로서 최고로 힘든것들

by 김경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에 잘 적응 하는 존재이다. 갓태어나서 가정환경에 적응하고 조금 성장해서 어린이집 생활부터 여러 사회생활에 적응해간다. 처음에 아이가 태어나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걱정되어 울면서 세월보내던 초보엄마는 어느새 아이 3명을 키워 이제 고1,중3,초5학생들의 학부모가 되었다. 아이가 처음 엄마 품을 떠날때는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었다. 3살에 어린이집 보내서 돌이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바로 보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해서 3명 다 어린이집에 보냈다. 잘 적응할지,친구와 선생님들과 잘 지낼지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어린이집 생활을 잘 적응했고 즐겼다. 친구들과 같이 잘 지내고 선생님말씀도 잘 따르고 어린이집 모든 생활을 즐겨 했다. 아이들의 순한 성품덕분에 아이들은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에 이어 유치원 학교 생활까지 잘 해간다. 저학년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점점 커가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지, 친구와는 잘 지내는지 가끔 걱정되어 선생님께 상담 받기도 한다. 아이들이 반 친구들과 잘 지낸다는 선생님 말씀 들으면 마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나는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공장을 다니다가 공장에 매인 생활을 하면서 뉴스에서 우리나라의 고령화 문제가 이슈로 되어가고 이제는 고령시대에 들어서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에는 고령화문제가 늘 걸려있었고 나는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였다. 처음에 공부를 할 때 나이가 30대 후반이어서 요양보호사가 중요한지를 잘 모르고 공부를 하다가 헤지부지 하여 결국 공부를 포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가 젊기 때문에 많은 공장에 다닐수 있었다. 그래서 늘 공장을 다니다가 농사일 하다가 하면서 나이 40대 되어서 요양보호사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다시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공부를 할 때 가르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리는 자부감을 가지라고 하신다. 우리는 그저 남의 기저귀나 가는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어르신들을 케어하여 그들이 삶을 더 잘 살아갈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케어해주는 직업이라고 선생님 자신도 엄청난 자부감을 가지시고 강의하셨다. 그러면서 많은 사례들을 얘기해주시면서 삶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때부터는 마음속에 어르신들 케어하는데 이상하게 동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케어가 필요하면 먼저 부모님 케어부터 하려고 했던 생각이 점점 직업으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나서 직업을 소개 받았다. 그당시 요양원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수 있엇다. 책으로 배운 내용들을 실전에서 배워나가고 익혀 나갔다. 처음 간 요양원은 주야간 보호하는 시설이었는데 1층은 주간보호담당이고 2층은 주야간 보호하는 곳이었다. 처음에 일갔는데 한 여자 어르신이 대변을 좀 많이 보시는 편이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뒷정리 해야 하는지 머리가 하얘졌다. 옷이 다 넘쳐나서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서 쩔쩔 매면서 팀장님께 말씀드려서 경력자인 선배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처리해주셨다. 나는 옆에서 그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심 많이 부끄러웠다. 이것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요양보호사 한다고. 그다음에는 내가 처리하려고 했는데 선배 요양보호선생님이 하던것처럼 깔끔하게 잘 안되어 두 번째도 도움 받았다. 그후부터는 잘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자충우돌 한가지씩 요양보호사 일들을 배워나갔다. 7개월 정도 배우니 어느정도 기본적인 업무들을 몸에 익힐 수 있었고 그리고 점점 하는 일들이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일들이 점점 쉬워지니 마음에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어느 정도 익수하지만 마음가짐도 항상 업그레이드 해야 하고 또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하여 우리의 자질을 높여햐 하므로 우리는 온라인 교육도 받아야 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한사람을 정성껏 케어 할 수있다는 자부감을 가지고 항상 자신의 질을 먼저 높여야 한다.

얼마전에 우리 시설에 한 어르신이 입소하셨다. 그 어르신은 덩치가 크고 욕창이 좀 깊게 나오셨다. 오시기전에 다리 수술을 하셔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셨다. 내가 야근하는 날, 새로 오신 어르신은 혼자서 침상에서 내려 오셧는데 나는 기가 막혔다. 그 어르신은 혼자서 잡고 서지도 못하였다. 나 혼자서 그 어르신을 들어올릴 힘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안달이 났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떻게 올려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하얘졌다. 본인이 잡고 설수 있으면 조금 부추겨 일으키면 되지만 그것이 안되기에 더 안타까웠다. 어르신 사진을 찍어 직원용 단톡방에 올렸다. 그리고 시설장님은 어찌 조심해서 침상에 올려 앉힐수 있도록 하셨다. 여러번 애써도 잘 안되었다. 나는 집이 요양원에서 가까운지라 어쩔수 없이 남편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남편에게 도움받아서 겨우 어르신 침상에 모셔놓고 안도의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얼마동안 어르신 침상에 끊으로 여백의 공간을 묶어놓아서 어르신 함부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처음으로 낯선 곳에 오신 어르신은 당분간 침상생활을 하면서 저희들이 욕창에 힘쓰고 정성들여 한달정도뒤 어르신의 욕창이 많이 나아졌다. 욕창이 많이 나아지자 어르신은 이제 화장실 이동을 하실 수 있었다. 지금은 식사도 잘하시고 화장실도 잘 다니시고 다리에 힘을 주어 잡고 설수 있어서 우리가 케어하기에 많이 쉬워졌다. 누가봐도 건강해지시고 모든 프로그램에도 잘 적응하시고 이제 집에가자는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적응 잘하시는 어르신을 보면 알게 모르게 힘이 나고 요양보호사로서 자부감도 든다. 우리의 노력과 케어로 저 어르신이 새롭게 마음을 먹고 잘 적응해 나가시니 내심 기쁘다. 이런 맛에 요양보호사를 한다.

그 어르신 뒤에 또 다른 한 어르신이 오셨다. 역시 할머니 분이신데 이 어르신은 덩치가 작으셨다. 어르신이나 우리는 서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도 어르신을 모르고 어르신도 낯선 곳에 적응하여야 했다. 매일 집에 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이어르신 역시 팔에도 다리에도 힘이 없다. 그러면서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밤새도록 애를 쓰신다. 한번 가서 어르신 바로 눕혀 놓으면 어르신은 또 한 참 애를 써서 내려오려고 하고 이렇게 내려오고자 하는 어르신 행위와 바로 눕히는 나의 마음이 계속 반복된다. 어르신도 침상손잡이와 침상 한쪽 끝의 공간을 줄로 묶어놓고 쉽게 내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어르신께는 더 큰 점이 있었다. 식사를 잘 안하시는 분이다. 하루 3끼의 식사와 중간 중간의 간식을 부담스러워하셨다. 어떤 때는 식사시간에도 계속 주무신다. 할수 없이 한끼의 식사를 거르시면 그 다음은 식사를 잘하셨다. 원래 소식하시는 분 같았다. 그렇게 하루 하루 적응해가면서 우리는 점점 그 어르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잘 케어하고 있다. 최근에는 침상에서 내려 오려는 의욕도 없는 동시에 지금은 밤이고 낮이고 계속 자려고 한다. 여전히 식사 수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드려야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어르신이 입을 잘 벌리지 않는다. 3년 정도 요양원 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어르신들 보아왔지만 스스로 입을 벌리지 않는 어르신들 제일 케어하기 어렵다. 스스로 식사할수 없으면 입이라도 잘 벌려 주시면 식사케어를 잘 할 수 있지만 밥때가 되어서 입을 벌리지 않으니 애간장이 탄다. 특히 야간때는 선생님 한명이 케어를 해야하기에 아침 식사를 할 때 애간장이 탄다. 어르신 식사도 도와드려야 하고 다른 어르신들 식사를 챙겨주고 약도 양치컵도 다 챙겨줘야 한다. 다른 요양원 같으면 10여명의 어르신 케어에 2~3명 정도의 요양보호사가 하지만 저희 요양원은 야간에 1명이 케어한다. 시간은 바쁘고 여러명을 케어는 해야 한다. 정말 아침 5~9시까지는 발바닥에 불이날 정도로 빠르게 서둘러야 한다. 이런 상황에 식사시간에 한 어르신 옆에 붙어서 전적으로 그 어르신의 식사수발을 도울 수 없다. 그 어르신 식사를 수발하면서 다른 어르신 약을 챙겨드려야 하기에 어쩔수 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할 수 밖에 없다. 어르신이 입을 잘 안벌려 주기에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시간, 요양보호사 1명이 더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든다. 스스로 하고자 의지가 있는 어르신케어는 마음에 힘을 주지만 스스로 하지 않으려고 삶을 포기한 어르신들의 케어가 마음에 힘이 빠지게 한다. 이런 어르신들 보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서 날마다 자신을 스스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렇게 전쟁같은 아침을 마치고 또 주간보호에 오시는 몇 명의 어르신의 아침밥까지 챙겨 드려야 한다. 6명의 주간 보호 어르신들 중에 3명은 시설에 오셔서 아침 식사를 하신다. 그중에 2명은 챙겨드리면 스스로 시사를 하시지만 1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식사수발을 해야 한다.

그나마 시설어르신들 케어가 빨리 끝나면 그시간에 마음놓고 주간보호 어르신들 돌보실수 있지만 시설 어르신 케어가 덜 끝난 상태면 마음이 더 급해진다. 비록 주간보호 담당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계시지만 그시간은 다른 어르신 송영을 하시기에 야간담당 선생님이 어느정도 챙겨주셔야 한다.

이렇게 매일 전쟁 같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하루 어르신들 무탈하고 잘 지내셨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얻고 뿌듯함을 안고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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