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월요일 일기
그래서인지 햄스터를 잃고 두 번째로 관심을 가진 ‘고양이’라는 동물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랜선 이모가 되어 유튜브를 통해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편집자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계획을 짠 것처럼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을 보여 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만 깜빡여도 귀여워서 깨물고 싶을 정도의 고양이들이 유튜브라는 콘텐츠의 바다 속에서 쉴 새 없이 떠올랐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걸까? 나만 고양이가 없는 걸까? 나 외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나만 고양이 없어!'라고 적은 것을 보고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다른 유행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왜 고양이만은 그렇게 끌리는 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양이를 키우는게 유행이라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내 통장이 고양이 한 마리를 책임지기에는 턱도 없이 얇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여행을 다니면서 찾게 되었다.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골목 곳곳에 물통과 사료가 가득 채워진 그릇이 골목 풍경의 일부인 것처럼 놓이게 되었다. 사회적 인식이 높아져서인지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길고양이를 애써 쫓아가 쓰다듬으려 하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사람들의 수 또한 전에 비해 줄었다. 그러자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본체만체 신경쓰지 않고 마이웨이를 표방하는 길고양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난 고양이는 나를 '귀찮은 것'으로 인식한 뒤,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볕이 잘 드는 곳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 태평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고양이에게 반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뻔뻔함을 실천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고양이를 마주칠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그 지역의 슈퍼스타로 알려진 고양이는 관광안내서에 소개될 정도였다. 강아지와 다르게 고양이는 사진을 찍든말든 가만히 몸을 내어주어서 사진을 찍기 더 수월하기도 했다. 셔터음이 지나치게 울린다 싶어도 몸을 일으키기는 커녕 고개만 돌리고 마는 고양이에게서 사회생활 만렙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고양이를 찍는 사람들은 그 모습에조차 열광하게 되니까.
할 테면 해봐라, 난 신경쓰지 않는다. 난 하고 싶은 걸 하고 밥 먹고 자겠다. 라는 고양이들의 태도를 보면서 반성하기도 했다.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 오늘의 할 일을 놓쳐버린 나를 돌아보며 고양이보다 멍청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하루 20시간을 자고, 4시간 동안 그 날의 일과를 마치는데 도대체 나는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길래 변변찮은 결과물도 내놓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걸까? 시간은 금이라는 입버릇과 달리 시간을 물처럼 보내는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싫으면 확실히 표현을 한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앞발로 다가오는 사람의 팔을 한 번 툭 친다. 그래도 사람이 물러서지 않으면 발톱을 세워 세게 긋는다. 거기서 또 물러서지 않으면 물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다.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의 공격적인 모습을 보고나면 '호랑이도 고양이과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앞에 있는 자그마한 동물은 예쁜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결코 사람보다 만만한 종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목적 없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늘 뭘 하지?', '일어날 힘도 없어', '킬링타임용으로 볼만한거 없냐'라고 묻는 동안 길고양이들은 생존을 위해, 집고양이들은 필요로 하는 것을 집사에게 요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결정적으로 고양이는 본인이 필요할 때만 사람을 부르는데, 그 모습이 밉지가 않다. 평소에 얌전하던 애가 왜 이러지? 뭐지? 도움이 필요한가? 라고 생각하며 사람이 고양이에게 절절매게 된다. 밀당의 고수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요목조목 따져보고 나니, 내가 왜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다. 내 몸은 고양이가 아닌, 인간의 육체이기에 고양이와 똑같이 살 순 없지만, 고양이에게서 발견한 장점을 토대로 내 삶이 흘러가길 바란다.
나는 부디 내가 좀 더 뻔뻔하게 굴길 바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고, 똑같이 욕하며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 돈을 걱정하며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의학이 발전해서 120세까지는 살 것 같은데, 그 긴 시간을 타인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면서 산다는 건, 너무 억울하다.
Editor by 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