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보는 아내는 내가 힘들어 보이고 위태로워 보이나 봐
우리 회사는 사내 메시저로 MS Teams를 쓴다. 아침 출근길 셔틀버스를 타면 Teams로 오늘 업무배치가 뜬다. 물류센터라 오늘 하는 일과 내일 하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매일 하는 일이 다르다. 쿠팡은 숙련된 전문가보다 대체가능한 인력풀을 원한다. 99개를 잘해도 하나를 못하면 욕먹는다. 멀티가 되어야 한다.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멀티가 안 되는 나로서는 참 곤혹스러운 일다.
오늘의 업무는 원래 집품이었다. 오늘 우리 부서로 배정된 일용직 단기사원 중 집품 경험자가 있어 난 포장으로 바뀌었다. 나의 뇌는 집품 모드로 세팅이 되었는데, 포장 모드로 전환하여야 하는, 변화와 적응은 피곤하다. 최근 포장 방법에 큰 변화가 있었다. 포장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부서 내 여러 일을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 하기 때문에, 뭔 변화가 있으면 거기에 적응하는 게 난 더 힘들다. 이 일 하고 있으면, 저 일도 해달라고, 여러 가지 일에 불려 다니는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니다. 그건 괜찮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휴먼에러가 발생하는 것이고, 그 휴먼에러가 용납이 안 되는 분위기. 용납이 안 되는 게, 사람들 많은 데서 공개적으로 관리자에게 혼나면 끝이기는 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데, 그게 참 피곤한 일이다. 관리자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관리자는 또 위에 가서 불려 가서 혼나기 때문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내 안엔 내가 너무 많다. 생각이 둥둥 떠 다닌다. 작년 말 작가의 꿈을 접을까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모든 작가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 생각을 먹고 글을 쓰는 작가다. 그 생각은 대개 개인적 체험을 기반으로 온다. 나만의 문체와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어디서 배우거나 다독을 통해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체험과 생각을 글로 쓰다 보니 나의 스타일이 생겼고, 그 스타일이 오늘날 어떤 사조들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시대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내가 특별히 독서를 많이 하고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다 보면, 그 스타일이 오늘날의 글쓰기 스타일 중 어느 하나와 닿아 있다.
이 생각이란 게 꺼지지 않는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다시 내게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 몰랐어. 10대도 아니고. 오늘도 하루종일 너를 생각했어. 누군가 그리워 그리움이 사무쳐 가슴이 아프다는 것,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물리적인 통증을 느껴. 그런 통증이 사라진 지 오래였는데, 요즘 다시 내 심장이 아파와. 눈물이 난다. 에세이 시 소설이 찾아오는 시간.
난 요즘 내 상태가 좋다고 생각했어. 글도 잘 써지고. 근데 옆에서 보는 아내의 생각은 그게 아닌가 봐. 엄청 힘들어 보이나 봐. 아내는 잠을 자라고 하는데. 회사 갔다 와서, 글을 써야 할 시간이 필요해서. 아내는 나 쿠팡 다니고, 자기는 부업하고, 돈 안 쓰고 모으고, 가족끼리 집에서 소소하게 재미나게 지내면 되는데. 지금은 그렇게 산다고 해도. 난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난 일단 에세이를 쓸 거야. 에세이로 대한민국을 씹어 먹어 버리겠어. 이기주의 시대를 끝내고, 최다함의 시대로 만들겠어. 책 한 권으로, 백만 권, 천만 권, 무한 팔겠어. 나는 욕망한다. 나의 욕망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인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작년 사십 대 중반에 정중앙을 찍고 오십대로 향하는 나이에도 여전히 그런 꿈을 꾼다는데 격려를.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응원하지 않으면, 누가 그걸 하겠어?
나의 글쓰기의 1차 목표는 1일 1글이다. 그게 쉽지 않다. '일기 같은 에세이'를 지향하지만, '일기'가 아닌, '에세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읽혀서 돈이 될 수 있는 글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1일 1글도 글마다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올라와 주어야 한다. 글 하나 보고, 지나가는 출판사 편집자가 출간 제안을 고뇌할만한 글을 싸야 한다. 매일매일 그런 글을 싸야 한다. 그러니 매일매일 글 쓰는 자체보다 매일매일 양질의 글을 싸는 글 싸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내 안에 글 공장 또는 공방이 있어야 한다.
잠깐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지나가봐야 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내가 평가할 게 아니라 독자가 타자가 평가할 문제인지도 모르겠는데, 2026년 초 나의 글이 변하는 특이점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 그런 글을 요즘 나는 매일 쓴다. 난 항상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동안은 아직은 나를 작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첫 책을 내지 못했고, 글로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 그렇게만 생각했다. 여전히 출간작가가 되지 못했으며, 글이 돈이 되지는 못하지만, 나는 작가다. 글 쓰니 작가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글의 수준이 이제 작가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선언하기로 했다. 나는 작가다.
그래서 아내가 보기에 요즘 내가 힘들어 보이고 피곤해 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도 더 불행해져 가는 중인지도 모르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