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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28. 2021

오늘 여기에 충성하면 내일이 올까?


동생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지난주 동생이 나를 불렀다. 온라인 강의를 끊어줄 테니, 유튜브 영상제작과 어도비 프리미어 영상편집 관련 강의를 퇴근 후 들으라고 했다. 영상제작 영상편집은 한때 학원을 다니면서라도 배우고 싶은 분야였기는 했다. 지금 말고 과거에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점에 이것저것 폭넓게 자기 계발을 할 열정이 내 안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 안에서 근무시간에 내게 맡겨진 일만큼만 하고, 근무시간 끝나면 칼퇴근을 하고 싶었다.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할 일이 남은 날 마무리 짓고 가는 것까지는 어떻게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회사와 나 개인의 동반성장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고 싶은 마음과 여유가 1도 없었다.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을 원한 게 아니라, 퇴근 이후의 시간에는 작가로서의 내 삶을 살고 싶었다. 현재의 업을 위해, 내가 꿈꾸는 미래를 잃고 싶지 않았다.


온라인 강의 끊어줄 테니 영상제작 강의를 들으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경기도교육청 웹페이지에 들어갔다. 내가 사는 수원에 있는 집에서 버스로 30분이면 가는 초등학교의 영어회화전문강사 자리가 있었다. 아내 에미마에게 먼저 상의를 하고, 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서 보냈다. 내가 2013년 2014년에 하던 일이다. 오래전 경력이고, 좋게 끝난 게 아닌, 절반은 실패한 경력이라, 교육경력 란을 비워 두었다. 공인 영어점수도 일반인이 아닌 영어교육 전문가로 얼마 되지 않는 점수마저 만료된 지 오래라 비어두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자격은 중등교사 영어과 정교사 2급 하나만 적었다. 대신에 학교에서 요구하지는 않지만, 최근에 취득하고 학교교육과도 연관이 있을 법한 한국어교원 2급 자격을 적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자격이다. 자기소개서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장과정 인성 등을 업무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쓰고, 만약에 그 학교의 영어교사가 되면 어떻게 가르치겠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적었다. 그리고 학교에 다문화 가정 학생이 있을 수 있는데, 내가 취득한 한국어교원 2급 자격으로 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썼다. 온라인 과정을 이수한 것이라 사실 공부는 안 하고 자격만 딴 셈인데, 그게 필요하면 그때 받은 교안을 보면서 도움받으며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수업은 이론 공부와 달라서, 수업 전에 수업 설계와 준비만 잘하면 준비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가면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는 점심식사가 쉬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 식사 지도 시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8시 30분에 출근하면 4시 30분에 퇴근한다. 10시 출근 7시 퇴근인 지금은,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8시에 집을 나와 9시에 집에 들어오는데, 이런 면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1년 후에 다른 자리를 알아보아야 하는 것은 있지만, 수원 지역에 영어 교사 자리는 계속 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풀려 빨리 작가가 되면, 오래 직장 생활하고 싶지가 않았다.




만약에 학교가 되지 않으면, 집 근처 내부 인테리어는 잘 되어 있고 간판만 구린 카페를 인수해서,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거기서 내 1인 출판사를 하며,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온라인 서점도 겸하여할 생각을 해 보았다. 카페 해서 돈 벌 생각은 없었다. 잘 되면 카페는 적자가 나도 되었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책 써서 내 책을 팔고, 내 책을 가지고 카페에서 유튜브 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 초대해서 온오프라인 상에 북콘서트도 하고, 수원 우리 동네에 뿌리를 박지만, 인터넷 보고 찾아 예약하고 올 수 있는 북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간단한 디저트와 함께 말이다. 아들 요한이가 클 때까지는 나 혼자 카페를 운영하고, 요한이가 좀 크면 아내와 둘이 하면 되니, 1인 출판사에서 대박이 나서 내가 거기에 집중하면서 사람을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인건비를 안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도 인쇄 유통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내가 하면 되지 싶었다. 작년에 출판편집디자인 과정을 이수해서, 출판사에 북디자이너로 취업할 실력은 되지 못했지만, 책 같은 책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익혔기 때문에, 내가 전 과정을 다하면 되지 싶었다. 어차피 책도 내 책을 낼 출판사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내 책을 내면서, 내 주변에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을 도와준다는 콘셉트이다. 북카페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내 책과 주변 사람들의 책을 마케팅을 잘하여 팔아 준다는 콘셉트이다. 마케팅도 일반적인 돈 쓰는 마케팅이 아니라, SNS를 가지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선의 아웃풋을 낼 수 있는 마케팅을 생각했다.


회사 가기 싫으니까, 말은 되지만, 돈이 없어 되지가 않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 내가 출판사나 북카페 사업을 해서 돈 벌려고 그 아이디어를 떠 올린 게 아니란 것이다. 나는 글 쓰며 살고 싶은데, 지금 회사에 가기 싫으니, 딴생각을 한 것이다.


학교가 되면 학교에 가고, 안 되면 작은 북카페와 1인 출판사와 네이버 스토어 온라인 서점을 같이 하면서, 내 책을 쓰자는 생각을 했다.




오늘 면접 보러 오라고 통보가 오는 날이다. 1명을 뽑는데, 2명을 면접 봐, 그중 1명을 뽑는 시스템이다. 지원자가 1명뿐이면, 면접을 통해 수업 실연은 시켜 보고, 큰 문제없으면 그 사람으로 가는 시스템이다.


면접 통보는 오늘인데, 어제쯤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만약에 학교가 돼서 1년은 다닌다 해도, 그다음에도 작가가 못 되면 여기저기 보따리 장사로 다녀야 한다. 1년을 열심히 하면, 그 이후에도 어느 학교라도 가서라도 기간제 영어 선생을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어디 간들 힘든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나 싶었다. 사실 지금도 할만하다. 그냥 가끔 짜증 나고, 가끔 하기 싫고 그런 것인데, 가끔 하나가 짜증 나고 기분이 나면,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그리고 계속해서 짜증 나는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말이다.


동생 회사에 다녀서 애로사항도 있지만, 동생 회사에 다녀서 좋은 점이 생각해 보면 많다. 동생 부부가 여러 가지로 우리 부부와 요한이를 챙겨주고 사랑해 주는 것도 안다. 그거는 잘 아는데, 그거는 그거고, 그냥 지금 회사 다니는 게 피곤했다. 다른 일을 하면 다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업이라고 생각하며, 이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면,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문제이다. 그냥 돈 벌기 위해서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시킨 일이나 하다가 시간 땡 되면 집에 가서 내 일 할 생각을 하니까, 지금 회사가 내 삶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일들이, 미래의 내 삶에도 연관이 없는 부분도 아니다. 충분히 지금 일을 열심히 해서 회사와 나와 동반 성장하고 나의 역량을 키우면, 그것을 미래의 내가 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삶으로 연결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잠깐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을 조금 내려놓고, 회사 일에 좀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될 때까지 지금 다니는 회사를 평생 회사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사실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나는 잘릴 염려가 없고, 회사에서도 내 존재와 역할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의 빈틈을 메우는 일인 것 같아도, 내가 지금 회사를 나가버리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부분이 있다. 내가 없어도 누군가 할 수 있고, 내가 없어도 회사가 돌아가지만,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부분을 한 사람이 맡아서 할 사람이 없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나 외에는 내가 맡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다 할 사람이 없다.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와 음식물 찌꺼기 처리를 하고, 사무를 보고, 기획을 하고, 영상편집도 하고, 식당이 바쁘면 가서 양배추도 사다 주고 세팅도 해 주고, 영화나 드라마에 동네에서 아무 일이나 다 하는 홍반장 같은 역할을 내가 하고 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런 일을 나도 하고 싶지 않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중에,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극히 일부가 있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극히 일부의 일이 있을 따름이다. 사실 음식물 찌꺼기 치우는 것은, 그렇게 기분 안 나쁘다. 고무장갑 끼고 하면 된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들은, 회사 일들에 대해서 여기저기 전화해서 문의를 해 보는 것이다. 지금이야 익숙해져서 힘들지 않게 하는데, 처음에는 그게 참 어려웠다. 남에게 전화해서 싫은 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어젯밤 오늘 1차 서류합격 통보와 면접 보러 오라는 통지를 받아도, 학교에 안 가고 지금 있는 회사 그냥 다니기로 결정했다. 애사심이라기 보다도, 지금 회사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닐만하고, 또 학교 가서 지금보다 좋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이다. 2013년 2014년 그때는 가능한 학교에 붙어 있는 게 좋았지만, 지금 현재 나로서는 동생 회사에 붙어있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오늘 2시 전화가 왔다. 내일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이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하고 면접을 보러 가지 않을 의사를 학교에 전했다. 영어교육 전공을 살리는 것은 이제 나에게서 너무 멀어진 것이다.


서류전형에 통과했지만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작년에 국비지원으로 출판편집디자인 과정을 이수하고, 이력서를 뿌렸지만,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 오는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데 학교는 일부러 경력을 깎고 적지 않아도, 최소 필수 경력과 자기소개서만 써서 보내도, 오란데가 있다는 것이다.




아내와 부모님에게만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에게는 하지 않았다. 퇴근 때 동생이 나를 불렀다.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새로운 일을 말했다. 내가 일을 잘하면 동생이 만족스러워하는지는 동생이 표현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에 일을 잘 처리하면, 다른 일이 더 들어온다. 원래 하던 일은 그대로 하고 말이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을 업무조정해서 다른 사람이 할 사람도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압축적으로 하고, 내가 다른 일들을 끊임없이 더 맡아야 한다. 나중에 회사가 정말 잘 되고, 돈도 많이 벌고, 내가 눈썹을 휘날리게 중요한 일을 하게 되는 회사의 중역이 된다면, 쓰레기 치우는 직원을 고용하는 게 효율적일 때가 오면 업무조정이 되겠지만 말이다. 어제 전까지는 그렇게 회사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게 싫었던 것이다. 그냥 지금 내가 하는 일 수준에서 조금씩 지금 내 능력을 가지고 회사 일을 하다가 땡 되면 퇴근하고, 퇴근시간 이후 할 일이 남으면 하던 일은 마무리 짓고 가는 정도만 하고 싶었다. 돈 받고 시킨 일이나 하고 퇴근하고 싶었지, 애사심을 가지고 회사와 내가 동반성장하기 위해서 달리고 싶지 않았다.


퇴근 때 동생이 나를 불러,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내 일이 잘 풀려 내 일을 하며 사는 미래가 나에게 다가올 때까지, 이제는 이 회사의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에 충성해야, 내일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여기가 힘들어서 탈출 시도를 해 보았다. 지금 월급보다 조금 더 받으면서 탈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여기를 살기로 했다. 오늘에 충성해야, 꿈꾸는 내일이 올 것 같다. 내가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먼 곳을 찾아 헤매다 결국은 모든 것을 놓쳤던 것이다. 이번 고민과 선택은 지금 여기를 받아들이고 선택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바뀌니, 며칠 전만 해도 회사가 재미있었는데, 바뀐 시각을 가지고 회사를 보니 내가 하는 회사 일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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