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이 훈이
어린 시절에 나를 만났던 동네 주민들은 엄마에게 항상 이런 이야기를 했어.
"아이고~, 얘는 어쩜 이렇게 순하대요?."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배를 깔고 드러눕고, "예뻐해 주세요!" 하던 꼬꼬마 시절이었어.
청년이 된 지금은 어떠냐고?
예상했겠지만..., 사실 난.... 호불호가 강한 댕댕이야.
좋고 싫은 게 분명하지!
가끔은 내 안에 숨어있던 터프한 훈이가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언제냐면, 음....
친구들이 나를 귀찮게 할 때?!
특히, 유치원에 날 데리러 온 엄마와 인사를 하는데 방해하는 눈치 없는 친구들이 있어.
반나절 만에 만난 엄마에게 막 만져달라고 얼굴을 들이밀고,
'우쭈쭈~'를 만끽하고 있는 순간!
눈치 없이 엄마에게 다가와 애교 떨고,
엄마한테 만져달라고 조르는 친구들이 있어.
눈치 없는 놈들!
그 놈들 때문에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질투쟁이 훈이가 불쑥 튀어나와.
그리고, 꼭~ 그런 애들도 있다?!
빨리 엄마랑 집에 가서 맛있는 밥도 먹고, 재밌는 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고 싶은데.
가지 말고 여기서 자기랑 더 놀자고 하는 친구도 있어.
그럴 땐 까칠한 시크 훈이가 되곤 하지.
"저리 가!, 안 가냐잉~?!, 멍멍! 으르rrrrr~."
하면, 친구들이 구시렁거리며 다른 자리로 피해.
그럴 때도 있지만, 생각지 못한 나의 가장 이중적인 모습은 말이야.
사실 엄청 고난도의, 아무나 할 수 없는 메서드 연기야.
바로 '불쌍한 척!' 하는, 불쌍한 훈이 연기거든.
엄마랑 아빠가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볼 때.
낯선 친구들이 있는 곳에 놀러 갔을 때.
산책하고 싶은데 엄마가 꼼짝도 안 할 때.
이럴 때 나의 불쌍한 표정 연기는 연기대상감이라고들 해.
낯선 친구들이 있는 곳에 갔을 때도, 사실 엄마가 없으면 친구들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지만 나는 엄마하고 노는 게 제일 재밌거든.
그래서,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어.
낯선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엄마와 하는 공놀이, 나 잡아봐라 놀이, 등이 헐~~ 씬, 몇 십배, 몇 천배는 재밌거든. 후훗.
원래 사람이든 댕댕이든 딱 한 가지 성격으로 구분 짓기 힘든 법이니까....
우리 엄마는 나의 이런 다중이 성격도 사랑해줄 거야.... 흑. 맞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