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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finder Jun 02. 2021

영화 <노매드랜드>: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유랑의 흔적

상실의 깊이를 설득해내지 못한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영화였다. 오스카 상을 휩쓸다시피 했으니,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내용 자체의 깊이는 있지만 그 깊이를 충분히 설득해내지 못한다. 극장에서 영화보면서 시계를 두 번 이상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흡인력이 부족한 영화다.


<노매드랜드>는 깊은 영화다. 주인공 펀을 비롯해 노매드인생을 자처한 사람들의 사연 때문이다. 펀은 남편을 잃었다. 그가 마주앉는 노매드들 역시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 이들이다. 그들의 유랑은 옛기억과 옛집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읽혔다.


"나는 거주지는 없지만 집이 없는 건 아니야."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된다는 말에 펀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houseless'지만 'homeless'는 아니라고. 물질적인 집이 없지만, 마음 쉬어갈 공간(home)마저 없는 건 아니라고.


사실 캠핑카인생이 마냥 낭만적인 건 아니다. 펀의 '집'엔 개미가 득실거린다. 화장실도 편하지 못하다. 집을 움직이는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을 땐 쓴소리를 무릅쓰고 다른 노매드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실제로 펀의 이웃은 펀에게 사막에 스페어도 없이 왔냐고 묻는다. 참 철없다, 라는 시선이 읽힌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이 치명적이다. 캠핑카가 고장나서 수리하러 갔을 때, 펀은 이런 말을 듣는다. "수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요. 차라리 수리비 보태서 다른 차 사는 게 낫겠네요."


그럴 수야 없었다. 펀에게 캠핑카는 손때 묻은 집이었으니까. 그래서 펀은 답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차는 내 집이에요(I live in there). 그 안을 꾸미느라 내 온 정성을 들였다고요."




영화 중반부, 펀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저 모르핀이 왕창 나오게 튜브를 누르고 있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자네 곁에 오래 머물고 싶었을 수도 있지."


남편 이야기다. 투병 중이던 남편이 너무 괴롭지 않도록,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편의 고통을 없애주면 남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니까.


"아들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영원한 이별은 없어요. 그래서 우린 작별인사는 안해요. 대신 '나중에 또 만나요' 라고 말하죠."


노매드 대부분이 상실을 경험한 것이 우연일까.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그들을 길 한복판으로 내몰았던 건 아닐까. 노매드로 살아가면 영원한 이별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까. 길 위에서 훗날 다시 조우할 것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서두에 언급했듯 분명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펀을 매개삼아 노매드들의 유랑의 흔적을 수집하는 구성을 취한 탓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기-승-전-결로 완결되기 보다, 자잘한 부스러기로 흩날린다. 유난히 집중하기 어려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면 도중에 관람을 포기했으리라.


그들이 왜 유랑의 삶을 택했는지 선명히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의 구성으론 '상실'과 '유랑'을 잇는 연결고리가 헐겁게 느껴진다.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은 가슴을 치며 볼 영화지만, 나처럼 소중한 이를 잃어본 적 없는 이들에겐 거리가 먼 연출로 다가왔다.



다만 좋았던 점 역시 뚜렷하다. 음악과 함께 노을을 비추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상실의 아픔과 떠도는 삶이 함께 묻어나오는 대화보다 훨씬 좋았다. 정말 역설적으로 아무 대사도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가장 큰 울림을 받았다. 전라 상태로 호수에서 유유히 수영하는 펀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노매드인 펀이 아마존, 이케아 등에서 노동을 지속하는 설정도 좋았다. 처음엔 이 장면을 '자본주의가 낳은 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의 삶'으로 해석했다. <씨네 21> 송경원 기자님은 전혀 다르게 해석하더라. 그의 문장이 훨씬 좋았다. 주옥같은 문장을 옮기며 리뷰를 마친다.



"펀에게 있어 노동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고역이 아니다. 그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증명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오늘을 영위한다. 펀은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내뱉는 말에 적극적으로 항변하지만 그들의 삶을 교정하려 들진 않는다. 펀에게 있어 이것은 공존하는 가치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수많은 삶을 집어 삼켜온 자본의 속성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할 때 이에 굴복하지 않고 노동을 통해 자존을 지켜나갈 따름이다."




영화 <노매드랜드>

5.29 압구정 CGV 아트시네마 관람

평점: 7.5/ 10

한줄 평: 상실과 유랑을 제시하지만 '설득'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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