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남의 <만약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읽고
책이 좋은 이유 하나를 꼽자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봐 줄 때가 있다. 별일 없어요. 잘 지내요라고 나의 안부를 묻는 인사말에 무덤덤히 대답하고 이내 애끊는 속마음을 감춘다. 누구에게 털어놓은 들 달라질 것 없다. 시간이 해결을 해주기 바라며 이유 있는 외면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마음이 심히 아픈 상태가 아니라면, 내게 필요한 책을 운 좋게 만날 수도 있다.
김혜남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신 산다면> 책이 그랬다. 학습관 수업을 듣는 엄마를 데려다주고, 나는 같은 건물에 있는 도서 열람실을 찾았다. 신착 도서 코너를 두루 살피다가 고른 이 책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펼쳐 볼 요량으로 기회를 미뤄 뒀었다. 제목만 읽어도 내용을 알 것 같았고, 정신분석 전문의이자 파킨슨병을 앍고 있는 저자의 책을 예전에 읽어 본 적이 있었던 터라 이 분이 쓴 책의 맛이 어떤지 알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삶에 대해 따뜻한 위로와 조언이 담겨 있을 책이라고 알았더라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잔잔하게 파동 치는 온기의 울림이 소리 없이 마음속에 퍼진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전해지는 온기가 다른 이유는 저자의 진심이 나에게 와닿았기 때문이겠지.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홀러 갈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작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하세요."
스스로를 한심하고, 모자라고, 허둥대는 결점투성이로 바라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착하고, 남을 배려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바라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똑같은 나인데도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p.93
나이를 먹을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웬만한 일은 다 겪어 봤기에 호기심이 안 생긴다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면서, 뭐 신나는 일 없냐고 묻는다. 하지만 오금이 저릴 만큼 재미있는 일은 우리 인생에서 그다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은 평범한 일상이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실은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해 봤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거라는 걱정,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엇이든 시도해 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일에 도 쉽사리 호기심을 갖지 못한다. p.167
그런데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것이 굴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그저 말없이 순종만 하는 수동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누워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나 모멸감, 부당함 등 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 내는 것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p.205
힘들고 앞이 막막할 때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기댈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더 큰 상실감이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찾아도 그 누군가를 발견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말없이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인생 선배가 전하는 따뜻한 위로에 잠시 기대고픈 분
지금 나의 삶이 온통 회색빛으로 보이는 분
자신을 다독이며 응원하고픈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