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다희 Jul 25. 2024

당신은 왜 쓰는가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 모임에서 읽을 글을 고르느라 시간을 한참 보냈다. 고심한 끝에 고를 주제는 '쓰기'로 정했다. 지난 시간에 '읽기'에 관해 관련 글을 읽고 이어서 '쓰기'에 관해 글을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읽기와 쓰기' , '쓰기와 읽기'이 둘의 관계는 한 몸처럼 엮여 있다.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고, 쓰다 보면 읽고 싶은 욕구가 마음에 돌아가며 고이곤 한다. '쓰기'에 관한 수많은 글 중에 어떤 글을 읽어 볼까 하며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눈으로 훑어본다. 영감을 줄 좋은 글들을 인터넷으로 찾을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나의 손때를 기다리고 있을 책들에게 먼저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책장 두 번째 줄 세 번째 칸에 꽂혀 있던 조지 오웰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에 시선이 머물렀다. 

책 제목 때문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고, 이어 사놓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손길이 갔다. 



이 책의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부터 펼쳐 읽었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자라온 성장 배경을 먼저 설명한 다음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생계 목적을 제외한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밝힌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네 가지 동기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궁금하다면 각자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나도 그처럼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쓰는가


1. 아우라 있는 지성인

첫 번째는 조지 오웰의 동기와 비슷하다. 글 쓰는 사람은 똑똑해 보인다. 자기 생각, 가치관, 입장을 글로 명확하게 쓰는 사람은 어딘가 대단해 보이고 '멋있음'이 느껴진다. 글을 쓰는 작업은 고통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무언가에 골몰해서 기어코 텍스트로 자기의 언어를 찾아내는 과정이 지성인의 모습 같다. 사는데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 사는데 글을 쓰지 않아도 되고,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사는데 지장 없지만 읽고 쓰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자들이라면 사는데 읽고 쓰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2. 울분과 갈증의 해소

과거의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년 시절, 책을 읽었던 때를 떠올려보면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님의 강요가 있을 때만 꾸역꾸역 책을 읽었다. 꾸중과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읽는 척만 했다. 학창 시절 국어시간은 늘 따분했고, 졸렸다. 이때 나의 속마음은 책을 읽을 시간에 그림을 하나라도 더 그리는 게 나은 거라 생각했다. 그림 그리는 게 무엇보다 행복했고 우선이었으니 그 외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이쪽 일을 평생 업으로 할 줄 알았던 내가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들어서 겉돌고 싶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흥미가 떨어지고 회의감이 든 배경에는 갈증과 결핍이 있었다. 시각적인 감각과 표현력, 직관력은 뛰어난 반면 논리적 사고, 생각의 체계화, 조리 있게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에는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모자람'이 계속되자 '내가 바닥에 있구나', 무지 임계점에 다다르자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불과 6~7년 전부터다.) '읽기'로 채워짐을 느끼자 '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뒤따라왔다. 무엇을 써야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는 그간 내 안에 쌓인 울분들이 가장 먼저 얼굴을 내밀었다. 이때부터 일단 써보기로 했고 처음 알게 됐다.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3. 나를 이해하는 방법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선 것은 3~4년 전쯤이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낀 나의 사연을 하나씩 썼다. 미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웠던 나는 쓰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진정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미움의 감정도 옅어졌고,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던 나로부터 조금씩 멀어졌다. 무엇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회피하지 않게 됐다. 당장 답을 찾을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을 엉덩이 힘으로 버텨보는 것이다. 당장 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랄까? 뻔한 말인데 알고 있는 것과 뼛속까지 느껴보는 것은 다른 체험이다. 이왕 쓴 김에 뻔한 말을 한번 더 짚어본다.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인생을 사는 나를 이해해 주고, 기다려 줄 주 아는 인내와 용기를 글을 쓰면서 배운다. 글쓰기는 나를 이해하는 방법 중에 가장 사려 깊은 도구다.



요즘은 솔직하게 글 쓰고 싶은데 솔직하게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워 왕왕 자기 검열에 갇히곤 한다.  나의 앞으로 글은 점점 나아질지, 나아가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만 맴돌지 알 수 없지만 부디 과정 중이라 여기고 계속 쓰기를 멈추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고되고 힘들어도 쓰고 싶단 마음이 먼저 인걸 보면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닌가 싶다. 


당신은 왜 쓰는가.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 모두에게

조지 오웰의 삶과 사유를 이해하고 싶은 분

날카로운 비판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정직한 필력을 느껴보고 싶은 분




사진: Unsplash의 Thom Milkovic

매거진의 이전글 한 사람의 읍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