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르바이트

by 다희사랑

대학교 종강을 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캠퍼스를 떠나며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방학이 한 달이 아니라 3개월이다. 고등학교라면 방학숙제라도 있어서 시간을 보낼 명분이라도 있지만, 대학교는 방학이 되면 2학기 등록금 버느라 아르바이트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여름방학 때부터 계획을 세워뒀다며 편의점, 카페, 음식점 등에서 일자리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하지만 나는 사정이 달랐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체력을 많이 쓰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었다. 긴 시간 서 있거나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 손의 정교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일은 무리였다. 막막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중에 엄마가 시청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봐 주셨다. 행정 보조 업무라고 했다. 마침 자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르바이트 3개월 끝나고 2학기 복학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간도 딱 맞아떨어졌다. 무엇보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나의 업무는 어렵지 않았다. 서류의 주소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1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한다. 점심을 먹고 나가면 되니 아침잠도 실컷 잘 수 있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 나는 일부러 30분 일찍 도착했다. 시청 건물은 생각보다 컸고, 복도는 깨끗했다. 안내 데스크에서 담당자를 찾아 인사를 했고, 그분은 친절하게 내 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처음 며칠은 낯설었다. 서류 더미 앞에 앉아 주소를 하나하나 대조하는 일이 단순해 보였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집중력을 요구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무겁게 했다. 때때로 손이 떨려서 서류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고, 글씨를 쓸 때도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와 '서울시 강남구'는 다른 것일까? '102동 1203호'와 '102-1203'은? 사소해 보이는 차이들이 실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만큼 빨리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어쩌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지만 담당 선배님은 "천천히 해도 괜찮아. 정확한 게 더 중요하니까"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일에 익숙해졌다. 나만의 리듬이 생겼다. 서류를 보는 속도는 다른 사람들보다 느릴지 모르지만, 실수는 거의 없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선배님들도 하나둘 말을 걸어주셨다. "대학생이야? 몇 학년이야?" "전공이 뭐야?" 소소한 대화들이 오후 시간을 덜 지루하게 만들어주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출근하는 시간이라 사무실은 대체로 조용했지만, 가끔 민원인들이 찾아오면 분주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아르바이트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청 건물의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을 때마다,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생증 대신 출입증을 목에 걸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내가 맡은 일을 책임지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첫 급여를 받았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이 아니라, 내가 일해서 번 돈이었다. 내 능력으로 벌어들인 첫 수입이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일단 반은 저축하기로 했다. 2학기 등록금에 보태야 했으니까. 나머지로는 엄마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사드리기로 마음먹었다.

3개월 후, 나는 2학기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오후의 서류 작업이 한결 가벼워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름 햇살이 따갑지만,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은 시원했다. 나는 다음 서류 묶음을 조심스럽게 펼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구나, 생각하면서. 그리고 장애가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 또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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