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씩씩한 시온이가 두부케이스를 단어 카드 통으로 쓰는 내게 말했다. 두부케이스는 단계별, 종류별로 20여 개가 훨씬 넘는다. ''에구.~시온아, 선생님은 쓰레기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지구를 사랑하는 거야.''
''같은 말이 잖아요!''초3 시온이는 턱을 치켜들며 당당히 말했다. 엉뚱하지만 논술 수업이 제일 좋다는 시온이다.
매일매일 해맑은 초등학생들과 만나다 보니 언제나 동심(?)을 유지할 수 있다.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언젠가 커서 '그때 선생님을 만나서 참 도움이 되었어. 선생님 덕분에 공부가 너무 재밌고 실력도 갖추게 되었어. 선생님을 만나서 참 다행이야'라고 한 두 번쯤 추억해 주길 바랐다.
''선생님은 뭐든지 아끼시네.~ '' 아이들이 교재 한 권을 끝내면 각자 과자 하나를 준비해서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 책상이나 책위에 과자를 나눠주는 아이들을 위해 이번에는 낫또 케이스를 준비했더니 하는 말이다.
''선생님은 우리도 아끼시잖아. 이제 우리가 선생님을 아껴드려야지.''
아홉 살 은서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은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너무 감동되어 은서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들에게 진심이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니 뭉클했다. 그런 고마운 고백은 수년 후의 일일 줄 알았는데 감동은 어느 날 갑자기 훅 찾아왔다.
걸어 다닐 때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가르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새벽에 일어나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수업을 연구했다. 그 노력들이 헛되지 않게 아이들 실력이 쑥쑥 자랐다.
게임에 중독된 것처럼 공부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수업을 좋아하고 열성적으로 따라주는 아이들. 진도가 너무 빨라서 로켓걸, 제트 보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살짝 코칭만 해줘도 스스로 잘했다. 진정한 선생님이라면 더딘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잘 나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자신감 없어하는 아이에게 좀 더 신경 쓰기로 했다. 작은 성취에도 더 크게 손뼉 쳐 주고 친구들과 함께 축하해 주었다. 그 아이의 뿌듯해하는 얼굴, 함박 미소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닮고 싶은 인물을 쓰는 시간이었다. 에디슨, 안중근, 나폴레옹 등 위인들을 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 친구가 논술 선생님이라고 적었다. '설마 나를?'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자기도 커서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행복이다. 천직이다. 아이들은 내게 보내주신 선물처럼 보석 같은 기쁨을 준다. 누구보다 놀고먹는 걸 좋아하던 내가 일중독도 아닌데 노는 것보다 일하는 걸 좋아하고 있다. 고마운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