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리고 우리
2014년 9월 3일
프랑스 바욘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까미노 이야기. 아니 어쩌면 독일 쾰른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
내가 까미노를 걷게 된 사연은 참으로 간단해. 결국은 하흥이 되어버린 하은이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 그 권유는 나에게 이유가 되어 주었어.
계획성 따윈 없는 나를 위해 ‘결국은 하흥이 되어버린’ 하은이의 주도하에 진행되었어. 쾰른 이모댁에서 시작한 일정. 사실 우리는 9월 4일이 아니라 1일부터 기나긴 일정을 시작했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짧디 짧았던 그리고 깊디깊었던 시간이었어. 마치 한국에서 땅 속으로 기나긴 하수구를 뚫어 지구 반대편 그곳까지 나를 쏘옥 관통시킨 것 같은. 그리고 장난치듯 다시 나를 이곳 한국까지 되돌려 놓은 듯한 느낌이야. 아무튼 그만큼 흥미진진했고 뇌리에 각인되어 아직까지도 까미노를 생각하면 금세 콧잔등이 간지러워져 아무도 모르게 재채기인양 눈물을 쏟아내곤 해.
유럽 저가항공을 탈 요량으로 예약한 뒤셀도르프(Weeze) 공항. 이것이 우리 여행의 기나긴 시작을 알렸어. 정말 기나길었어. 사실 아래 사진을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1일 새벽,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날 밤 유부초밥을 싸가라는 이모의 말로부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날 나른했던 오후 무렵 슬리핑백을 사기 위해 떠났던 쾰른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가슴 졸였던 약 두세 시간가량. 그리고 화장실이 급하다던 두 여자가 한 밤에 어두운 동네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일부터 시작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1일 새벽, 유부초밥을 쌌고 전날 가슴조리며 샀던 슬리핑백도 챙기고 쾰른 이모, 아니 이제 독일 엄마 같은 이모의 배웅을 받으며 독일 이모부의 도움으로 호렘(Horrem)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고 메세역(Messe)까지 갈 수 있었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련한 하지만 어렴풋이 우리는 매우 초조했던 것으로 기억해.
도이치반 노조 파업이 들어가 문제의 슬리핑백을 사러 간 그 전날도 기차를 못 탈 뻔했고, 이 날도 기차 운행이 확실하지 않았던 터였어. 그래도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우리는 무사히 메세역에 도착해서 베쩨로 가는 공항리무진을 탈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먹방이 시작되었지.
Messe역에서 Weeze까지 약 두 시간가량이 소요되는 버스 여행. 그리고 Weeze에서 Beziers까지 한 번의 환승이 있었던 5시간?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았던 기차여행. 이 모든 여행이 하루 동안 벌어졌지. 아마 하흥이는 마지막 기차로 환승하는 그 대기 시간에 감자칩이 먹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는 맥도널드에 들려 나는 스낵랩을, 너는 감자튀김을 조마조마하게 샀지. 왜냐하면 우리는 그전에 프랑스 남자 셋을 만나서 한국어로 인사를 나누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거든. 그리고 다시 플랫폼으로 돌아와 기차를 기다린다는 명목하에 우리는 먹고만 있었어. 혹시 하흥이는 이것도 기억하려나?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나는 너를 버리고 기차를 향해 뛰어갔던, 그런 나의 뒤꽁무니를 따라와 너도 간신히 기차를 탈 수 있었지. 그중에도 우리가 정말 대책이 없었던 건 뭐냐 하면, 기차에 올라서 이 기차가 우리가 타야 하는 기차가 맞냐고 물었을 때, 그 기차에 타고 있었던 어떤 아저씨가 얘기했지. 일단 타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차가 맞아서 다행이었지만 일단 타라니, 그게 말이니 막걸리니?
참 신기하지? 나는 이 모든 걸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참 흐릿한 기억력으로 가끔 너를 혼란에 빠뜨리곤 했던 내가 말이야. 추억이란 이런 건가 봐. 그래서 난 공부는 못 해도 추억은 참 잘해.
그렇게 우리는 오밤 중이 다 되어서야 Bayonne에 도착했지. 그래도 역 바로 앞에 있었던 숙소 덕분에 그리고 그 가격에 조식까지 포함되어 있던 숙소 덕분에 편하게 쉴 수 있었어. 아니면 지쳐서 그렇게 푹 쉴 수 있었는지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 우리는 마르지도 않은 옷을 켜켜이 배낭에 구겨 넣으며 막간을 이용해 Bayonne시내를 구경하고 Biarritz까지 가기로 했어. 정말 아름다웠어. 우린 바다가 그리워서 매일 콘스탄츠 얘기를 했었거든. 하지만 이번엔 바다냄새가 나는 진짜 바다였어.
그래도 있잖아. 나 가끔은 그 나무 켜켜이 가두어 두던 습기 냄새가 그리워. 하흥이와 내가 만났던 그곳. 독일의 검은 숲 사이, 트리베르그 말이야. 나는 매일 마음 가득 그 냄새를 들이마셨어. 살면서 조금씩 내뱉을 수 있게. 그렇게 그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음에 가둘 수 있게.
아무튼. 수다병이 도졌는지 자꾸 딴 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아무튼이라고 입막음하지. 아무튼 말이야, 아무튼. 날씨가 좋아서 더 좋았던 그래서 조금은 더 새까맣게 탈 수 있었던 날이었어. 그 후에 이 ‘조금은’이라는 말은 사치였다는 생각이 들었지. 우리가 포르토에서 브이를 그리며 다시 사진을 찍을 때, 첫날이 떠올라서 함박웃음을 지었어. 사소한 일상 속에 사소하지만은 않은 추억을 공유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나 참 행복했어.
오늘은 질러보자며 하흥이와 오랜만에 먹었던 해산물. 하지만 이내 우린 알게 될 거야. 새로운 음식도 좋고, 맛있는 음식도 좋고, 좋은 음식점도 물론 좋지만 아무리 흔한 음식이라도 조금은 부족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도 우리 함께라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걸 말이야. 그걸 알게 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이 날도 참 길었어. 바욘시내에 갔다가 비아리츠에 갔다가 그리곤 기차를 탈 뻔했다가 버스를 타고 생장피드포(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했어. 순례자여권을 만들며 조개도 하나씩 배낭에 달고 므라찌도 만나고 수정언니도 만났어. 다음날 피레네산맥을 넘으며 먹을 간식거리도 샀지. 이때 하흥이와 나는 땅콩을 샀었는데, 그 땅콩은 그 후로 1주일이 넘도록 서로의 가방을 오갔고, 진드기 걱정에 샀던 시나몬스틱은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까미노가 끝난 뒤에 가방 구석에서 발견하고 우린 까르르 웃었어. 하지만 그날 모기에 물린 날, 요긴하게 썼으니 다행이야.
그렇게 우리의 첫날은 배낭 한가득 무겁게, 마음 한가득 가볍게,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들떠 있었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사실 좀 더 들떠있었을 거야. 아니면 우리 발에 스멀스멀 올라올 물집 때문에 좀 두려웠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니 다 추억이었고, 다 인연이었고, 다 청춘이었다.
이렇게 희디 희었던 우리의 살 결까지도 이제 추억인걸 보니 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야. 나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하얘지는 피부를 보는 것이 참 아쉽더라. 그때의 추억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알고 있어. 그 추억은 겉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여기에 있다는 걸.
여기, 그리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