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 #9 - 고양이와 햇살
재이와 와니는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고, 소파 위를 뛰어다니는 것도 좋아한다(박박 긁는 것도 좋아하는 건 비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햇살이다. 물론 사랑하는 집사 다음으로.
해가 길게 들어오는 정오는 다 같이 베란다로 나가 눈을 붙이기 딱 좋은 시간이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미쳐 신경 쓰지 못한 베란다 문을 열어주면 곧장 나가 천천히 햇살을 즐긴다.
쿠션 위에 앉아 햇살이 닿은 배와 다리를 느긋하게 그루밍하기도 하고, 환해진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왔다-갔다- 뒹굴거리기도 한다. 그리곤 눈을 끔뻑끔뻑 거리다 슬그머니 잠이 든다.
햇살 맛집의 단골손님들이다.
신혼집을 고를 땐 막연하게 그렸던 베란다인데, 요즘 햇살을 맘껏 즐기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마치 처음부터 아이들을 위해 존재했던 것 같달까. 그때 베란다를 고집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가끔은 창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때도 있다. 빛에 따라 반짝이는 나뭇잎,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고 수다를 떠는 새, 그리고 그 소리에 새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리라.
집안에서도 매일 보던 물건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잔뜩 경계하며 호기심 어린 코를 들이미는데, 생전 처음 보는 새와 사람이며, 규칙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이 이뤄내는 풍경은 얼마나 새로우랴.
그렇게 한참을 앉았다 거실로 들어온 아이들의 몸을 쓰다듬으면 참 따뜻하다. (한여름에도 덥지않은 따뜻함이다.) 어미 해의 밝음을 그대로 머금고 온 작은 햇살 같다.
그 햇살이들이 요즘 기운이 없다. 예외 없는 장마가 길어지는 탓에 좀처럼 충전을 하지 못한 게 오래기 때문이다. 베란다 문을 열어줘도 잠깐 나갔다 곧 들어오기 일쑤다. 해가 들어오지 않는 베란다는 앙꼬 없는 찐빵이니까.
이럴 때면 더워도 좋으니 얼른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날 좋은 주말, 브런치로 든든히 배를 채운 후 베란다로 나가 아이들을 양 옆구리에 끼우고 눈을 감고 있으면...
기분이 조크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