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장의 사진과 79개의 영상으로 남은 발리 #1

엄마와의 3박 4일 발리 여행기

by Dahl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배경인 발리는,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전 세계인들이 꾸준히 찾는 관광지 중 한 곳이다. 하지만 희한하게 나랑은 연이 닿지 않았던 곳인데, 지난 11월에 엄마와 3박 4일로 여행을 가게 됐다. 실은 엄마가 지인들과 가는 단체관광에 내가 꼽사리로 낀 것이었지만, 엄마와 해외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었기에 나도 엄마만큼이나 기대가 됐다.


Day1

호텔과 관광사에서 준비해준 웰컴프룻과 컵라면

저녁에 도착한 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현지 가이드들의 안내를 받아 대형 버스에 올랐다. 앞으로 3박 4일의 여정을 함께할 4호차 버스였다. 40분여를 달려 자정이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지만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와서인지, 커다란 호텔 내 객실 구조를 설명하고 각자에게 룸키를 나눠주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기절하듯 겨우 방으로 들어온 시각은 새벽 2시. 내일은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했다.


Day2

일찍 일어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발리에서의 첫 일정은 바로 앙카사 정글 래프팅 체험! 아예 물놀이 복장으로 입고 버스에 올랐다. 얼마 후 버스에서 내려 다 도착했나 했더니, 큰 버스는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나 둘 도착하는 작은 트럭의 짐칸에 옹기종기 앉아 래프팅 장소로 향했다. 같이 탄 현지인 가이드가 불러주는 익숙한 한국 가요에 장단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준비 완료! 방수팩을 1달러에 팔길래 급히 하나 구입했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 래프팅을 시작한 무리들(좌)과 분주하게 다음 보트를 준비하는 진행요원들(우)


일사불란한 안내를 받으며 짐은 락커에 넣어두고, 구명조끼를 입고, 헬맷과 노를 하나씩 챙겼다. 그리고 끝없는 계단을 내려가며 주변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차례를 기다렸다.


차례가 다가오자 긴장과 설렘이 반반으로 뒤섞였는데, 진행요원이 나를 '애기',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손을 잡고 보트에 앉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ㅎㅎ 간단한 설명을 듣고 '하나 둘하나 둘' 한국어로 구령을 맞춰가며 노를 저으니, 드디어 우리의 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경사가 높고 험난해 보트가 많이 움직일수록 "재밌다!"를 외치며 즐거워하셨고, 나는 열심히 그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미니 폭포 앞에서 엄마와 하트�
정체된 구간에서 다른 팀들을 만날 땐, 연신 노로 물을 날리며 물싸움을 하기도 했다.


가는 중간중간엔 음료수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들이 있었는데, 래프팅 도중 노점에 들러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코스의 일부인 것 같았다. 우리는 속는 셈 치고 2000원짜리 빈땅 맥주를 하나 사서 기분 좋게 나눠마셨다.


인도네시아의 국민 맥주 빈땅(BINTANG), 물놀이 후 마시는 맥주라 더 맛있었다.


후반부로 가니 급한 경사가 잘 나오지 않아 엄마는 좀 지루해하셨지만, 바로 뒤에 앉은 진행요원이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장난(저 숲 속에 악어가 있다고 하거나, 모르는 척 폭포 아래로 보트를 이동시켜 물세례를 받게 하는 등)을 치는 통에 마지막까지 래프팅을 재미있게 마쳤다.


이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부터 무리한 일정에 시달렸던 우리에게 쉬는 시간이 주어졌고, 엄마와 나는 숙소에서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그리고 느지막이 일어나 호텔 정원을 산책했는데, 도심 속 일상에선 보기 어려운 푸른 풍경과 맑은 공기에 온 몸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특이한 꽃들을 유심히 살피고 향기도 맡아보시며 좋아하셨고, 때로는 먼저 가서 꽃 옆에 얼굴을 대고는 자연스레 사진을 요청하셨다. ㅎㅎ


아름다웠던 '그랜드 하얏트 발리' 호텔 정원
상큼한 분홍빛의 '플루메리아'
반가웠던 '부레옥잠', 꽃은 처음 본 것 같은데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호텔이 워낙 넓어 미쳐 구경을 다하기도 전에 저녁 시간이 되어, 우리는 얼른 연회장으로 향했다. 넓은 홀일 줄 알았는데 야외에 둥근 테이블이 여럿 놓여있었고, 중간중간엔 요리사들이 음식을 직접 만들어내놓고 있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기 시작하니, 정면의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마치 디너쇼에 온 듯, 다양한 음식과 흥미로운 음악에 눈과 입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저녁식사, 음식의 가짓수가 어마어마했다.
11월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와 휴대용 선풍기가 없으면 안 됐다.


가끔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와 맥주를 한잔씩 하곤 했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 엄마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도록 뷔페 음식을 가져다 드리고 서로 술잔을 기울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즐기다 보니 어느새 공연이 끝났고, 모든 공연배우들이 나와 우리에게 무대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포토타임이었다. 좋은 듯 싫은 듯 머뭇거리는 엄마를 졸라 같이 무대에 올라가 배우들과 사진을 찍었다.


배우들과 똑같이 손을 모으고 찍은 인증숏


다분히 관광객스러운 사진이 나왔지만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방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그동안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엄마가 바로 핸드폰으로 옮겨달래서 사진을 고르다 보니, 전날 공항에서부터 하루 반나절 동안 찍은 사진이 백장이 넘었다. 놀라서 "엄마, 사진을 벌써 117장이나 찍었어!"라고 하니, 엄마가 말했다.

뭐? 그거밖에 안 찍었어?

엄마가 사진 찍는걸(정확히는 찍히는걸)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나는 놀라는 한편 굳게 다짐했다. '내일부턴 사진을 더 많이 찍어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