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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Mar 31. 2019

예, 그렇게 미승인 수집가로 거듭났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의 이모티콘 작가 도전기

지난 1월, 회사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2019년 신년 특집 - 작심삼십일과 함께하세요.' 내용인 즉, 새해가 밝았으니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삼십일로 30일 동안 꾸준히 실천하여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주제는 영양제 잊지 않고 챙겨 먹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하루 일정 거리 이상 걷기, 그리고 이모티콘 만들기로 총 4가지였고, 나는 그중 이모티콘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청했다.


언젠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이모티콘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예전에 LINE Creators Studio라는 앱으로 고양이들 사진을 이용한 스티커(한국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 LINE 메신저에서는 이모티콘이 스티커라고 불린다)를 만들어 본 적도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좌) LINE Creators Studio (우) LINE Creators Studio 앱으로 만든 나의 첫 번째 이모티콘, 사투리를 쓰는 고양이 콘셉트이었다.


일주일 뒤에 메일이 왔고, 다행히 이모티콘 만들기 그룹 2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1기는 이미 마감되어 유일하게 2기가 만들어진 그룹이라고 해, 이모티콘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첫째 날엔 각자의 이모티콘의 주제가 될 캐릭터를 만들고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정확한 프로젝트의 이름은 '스티커 만들기-똥손편'이었는데, 첫날에 바로 '손'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다른 분들이 선보인 고퀄리티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니, 아직 갈 길이 멀었단 생각이 들었다.


1일 차에 제출한 고양이 캐릭터


둘째 날부턴 매일 정해주는 주제에 맞춰 그림을 하나씩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10시 또는 12시(자정)로 마감기한이 정해졌는데,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8시, 9시에 끝나 급한 마음에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아이패드를 꺼내기도 했다.(모든 그림은 아이패드의 procreate 앱으로 그렸다.) 집에 와서도 씻지도 못하고 일단 그림부터 그려서 제출하고, 겨우 씻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려니 1일 1 그림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든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다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나중엔 점심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밥은 혼자 얼른 먹거나 아예 아이패드를 들고 카페에 가서 점심은 빵으로 간단히 때우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하니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도 빼놓지 않고 거의 1등으로 그림을 올릴 수 있었다. 일단 점심때 미리 그림을 제출하고 나니, 회사가 끝나고는 마음 편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그리고 29일째가 되는 날 마지막 그림을 그리고, 30일째가 되는 날 드디어 라인 크리에이터 마켓과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에 이모티콘을 제출했다. 작년부터 만들고 싶단 마음만 갖고 1년을 미뤄온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여러 사람들과 으쌰 으쌰 하며 매일 꾸준히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30일이 지나 총 28개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3만 원을 미리 보증금으로 내고 과제를 제출하지 못할 때마다 천 원씩 벌금이 깎이는 시스템도 과제를 빼먹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음을 부인할 순 없겠다.  

 


(좌) 라인 크리에이터스 마켓에 등록 후 리뷰를 기다리는 모습 (우) 퍼펙트를 기록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


그리고 이틀 뒤... 제출했던 이모티콘이 심사에 통과되었고,

라인 스티커 마켓에 이모티콘이 노출되었다!


지난번엔 5일 정도는 걸렸던 것 같은데, 이번엔 정말 빨리 마켓에 나오게 되어 신이 났다. 얼른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아는 분들에게 선물을 하고 열심히 내가 직접 만든 이모티콘을 날렸다. 다들 직접 그린 거냐며, 신기하다, 대단하다고 해 주셔서 기분이 참 좋았다.


Procreate 앱에서 볼 수 있는 작업 과정


그러나 8일 뒤... 한 메일을 받게 되었다. 좋은 소식 뒤에 따라온 나쁜 소식이었다.


야속했던 메일


이모티콘을 제출하고 10일이란 기간 동안 초조한 마음에 여기저기 검색해보며 카카오 이모티콘 심사의 승인/미승인 여부에 따라 메일 제목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메일의 제목만 보고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최소 2주에서 4주까지 걸린다는 심사기간은 10일 만에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장고할 것도 없이 내 이모티콘은 수준 이하란 뜻일까. 아쉬운 한편으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같은 상품으로 라인과 카카오톡에 이모티콘을 중복으로 판매할 순 없단 거였다. 그래서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아니, 될 때까지 시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승인이란 두 글자를 보기까지 미승인이란 세 글자를 자주 볼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난 미승인 수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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