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훈 Sep 19. 2024

저출산에 경제적 지원은 효율적인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 고령화에 대해서 기사들을 읽었다. 정부에서는 주된 원인인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꾸준한 지원을 해보려 각종 예산을 들여보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는 중이다. 나는 이게 큰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가 저출산을 맞이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 지원만으로 해결이 될까?


 돌이켜보면 과거에 더 가난하던 시절에도 아이는 여럿 낳아서 키웠다. 근데 지금 와서는 그때와 화폐가치가 달라서(?) 물가가 올라서 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급격히 줄어들 수 있을까? 바야흐로 현재는 혐오로 가득 찬 시대다. 더불어 남과의 비교에서 근소하게라도 우위를 점하고 싶은 이기적 경쟁심이 모두를 집어삼켰다. 한없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이미 그곳에 닿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난을 아끼지 않는다.


 이 비교와 혐오가 아이를 낳는 것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한정적인 자원을 보다 많이 스스로에게 투자해야 한다. 한데 그런 와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정말 효율적인가. 더군다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결혼한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후에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경제적 경력단절률이 높다. 들어갈 돈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준다. ‘왜 해야 하는가?’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뿐이다. 정부는 이런 측면에서 여성의 사회 재진출을 위한 정책이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책들을 내놓는다. 당장 눈으로 보이고 수치로 명확히 표시할 수 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효율적 정책이다.


 하지만 효율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위에서 말했던 것 중에 더욱 중요시해야 하는 포인트는 혐오다. 지금의 사회는 사소한 행동하나도 하기 조심스럽다. 내가 평소에도 쓰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이 특정 사이트나 집단에서 쓰이게 되면 나는 그 상황을 모르더라도 그런 곳에 소속되어 버린 사람으로 인식된다. 최근 논란이 많이 일었던 손가락 모양으로 수많은 연예인이 사과를 해야 했고 사투리로 알고 있던 표현을 썼다가 사실을 알고 사과를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잘못된 인식이나 행동을 한 것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이런 인식은 자신의 상황을 더욱더 절벽으로 내몬다. 남들보다 못한 것, 부족한 것에 대한 결핍, 그로 인해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며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점점 더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준비되지 못한 이들이 과감하게 달려드는 것을 만용을 부리는 것이며 나는 착실히 준비해서 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이는 결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길어져 늦어지게 하고 그러다 때를 놓치거나 아이를 낳을 정도의 준비를 하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더욱이 날이 가면 갈수록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많다고 느껴지는 요즘. 거기에 준비되지 않은 채로 가진 아이가 부모의 불행까지 나눠가지는 것을 보고 느끼는 연민. 이것들은 아이를 낳기 어렵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정책은 가장 효율적이다. 대부분의 문제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여건, 이를 위해서 임신, 출산, 육아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내놓았다. 이는 당장에 눈앞의 수치가 보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저출산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잘 보이기도 해서 제일 효율적인 것이다. 학업에 관련한 부분도 공교육의 질을 높여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경제적 부족함도 일부 해소해 준 유럽 국가들의 사례도 참고한다면 아마 경제적 여건에서의 문제는 조금씩 잡아갈지도 모른다(물론 지역의 편차가 심한 우리나라 현황상 쉬이 해결되지는 못할 문제). 하지만 문제로 대두되는 것들이 이 두 가지인 것이지 이것들을 해소해 준다고 해서 아이를 더 낳을까?- 하는 질문에는 나도 물음표가 띄워진다.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인식이다. 그 지독한 불편, 불만, 혐오는 아이, 부모, 가정, 결혼에도 가기 시작했다. 비교당하는 것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고 모든 행동에 '보다'가 붙기 시작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과연 현재 우리 사회가 한 아이를 위한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선뜻 아이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내 결혼이 부족하지 않고 가정이 화목하고 이쁜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모든 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당장 나조차도 그런 삶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당장 식당에서 시끄럽게 구는 아이만 봐도 어쩔 때는 이해하지만 과할 때에는 제재하지 않는 그의 부모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가 밉게 느껴지곤 한다. 혹여나 내가 미래에 아이가 생긴다면 저러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좋은 것을 입고 먹고 하며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기 위해 약속한 이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지만 반면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싸우고 추잡스러움을 보이며 갈라지는 이들에게서 불안함을 느낀다. 아름다움을 동경해서 닿고 싶어도 그 반대면의 추잡함을 알기에 다가서지 못한다.


 물론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요건이다. 위에서 말한 비교로 인해 나오는 불편, 불만이나 혐오들도 대부분 경제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경제적 측면에만 대두해서 해결하려는 정책이나 마냥 현실에 불편, 불만을 늘여놓으며 혐오하기만 하는 것이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 사회는 인식이 병들었다. 서서히 남들과 비교하던 삶은 사라지는 듯이 보이지만 여전히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은 없어지지 않았다.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세요!'라는 말이 돌아다니며 점점 sns에서 나와서 스스로의 인생을 사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점점 이런 흐름에서 우리는 비교를 멈추고 오롯이 자신의 상황에서 모든 것을 계산해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거다.


 갑작스레 저출산, 고령화에 관련된 여러 기사와 글들을 보면서 떠오른 것들을 오랜만에 글로 옮겨보고 싶었다. 내 말이 정답이란 확신은 없지만 그저 이런 시선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