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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an 06. 2023

감기약과 낮잠

감기약을 먹고 침대에 기대앉아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아, 내가 잠이 들었구나... 하며 의식이 돌아오던 찰나 옆에 누워있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는 벌써 출근했어. 방학이라 너와 이렇게 낮에 둘이 있으니 좋아. 나는 요즘 영화도 보고 영어공부도 하고 바쁘게 지내지만 마음이 완전히 낫지는 않은 것 같아. 영어 선생님이 토플시험을 목표로 공부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럼, 목표가 있는 건 좋지. 그렇게 해봐."


불투명한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와 환하게 밝은 안방침대에 함께 누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조금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이상하게 내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는 알아듣고 대답하기에 귀가 이상한가 했다.


그러다 엄마는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갔고 이내 물소리와 기침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런데 동시에 문 열린 다른 방에서 컴퓨터로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집에 엄마와 나, 둘밖에 없는데 왜 한 명이 더 있지? 오빠가 벌써 들어왔나? 의문이 든 순간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가 꺼림칙하고 기분 나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에 누가 있는지 보려 일어나려 할 때 내 몸이 마비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두 명의 인기척은 점점 커지고 몸을 움직이려는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덩어리처럼 굳은 몸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손 끝, 발 끝부터 힘을 주기 시작하여 안간힘을 써 결국 몸을 옆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고 정신이 어떤 불투명한 막을 뚫고 툭 튀어나왔다.


'아, 엄마는 죽었지.'

'오빠는 지금 나와 같이 살지 않지.'

'나는 결혼을 했지. 여기는 어디지? 부모님 집이 아니고 우리 집이구나.'


멍한 얼굴을 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옆 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이 안방에 들어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아, 키보드 소리...'


가위에 눌린 아침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기이한 기운이 내 몸을 떠나지 않는다. 엄마를 보려 했으면 볼 수 있었을까? 목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하다. 감기약 때문인지 하루종일 멍한 귓가에 힘없고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가 내내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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