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날 Jul 19. 2024

당신께


아침부터 부산스레 대청소를 했습니다. 개운하게 땀 흘린 몸을 씻고 단정한 공간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십니다. 저는 지금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숨 쉬듯 죽음을 생각해요. 마치 자율 신경이 작동하듯 말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졌어요. 저처럼 숨 쉬듯 죽음을 생각하게 된 당신에게요.


엄마의 자살 이후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일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이 어둠을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을까?’

유가족 모임 같은 것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만한 힘이 없더군요. 나는 그냥 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요.


당신께 저의 안부를 전하고 싶어요.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깊은 슬픔은 고약한 것들을 잔뜩 주었지만 한 가지 선물도 남겼습니다. 숨 쉬듯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요. 빛나는 것을 보려면 그늘이 필요하더군요. 저는 오늘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 화가 나고 무언가가 미워질 때 죽음이 저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요. 다시 행복해지라고요.


세계가 무너져 내린 당신, 당신이 겪은 것은 분명한 재난이고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슬픔의 첫 모습에 너무 두려워하지는 마세요. 그 슬픔은 당신을 쉬이 떠나진 않을 테지만 계속 그렇게 날카롭지는 않을 테니까요.


간절하게 당신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종교는 없지만, 깊은 마음으로 기도를 보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