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나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경 써야 하는 모든 것들이 번거롭고 매일 보는 가족에게 잘 웃지 않게 되었다.
밤이면 피로한 몸과 달리 정신은 점점 더 명료해지곤 했다. 텅 빈 거실에 쳐박혀 아무 영상이나 돌려 보며 눈꺼풀이 무거워지길 기다렸다.
휴직을 괜히 했나 싶기도 했다. 출퇴근하지 않는 삶을 사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큰 돈을 들여 멋진 기계를 샀는데 도무지 작동법을 모르는 상태마냥, 누가 내 손에 매뉴얼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애애애애부른 소리라는 것 잘 아는데, 배부른 소리는 말로 하기는 어려우니까.
아무튼 그랬는데, 괜찮아졌다.
어제 생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PMS였을 뿐.
오늘 나는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기분이 좋다. 카멜색 자켓에 빨간 체크 에코백을 매고 나갔다. 편집샵에서 예쁜 그릇과 조명을 구경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의 날카로운 눈빛과 어울리지 않는 어린 몸짓을 훔쳐봤다. 소진되면 빨리 문을 닫는 근처 빵집에 오늘따라 빵이 종류별로 잔뜩 나와 있었다. 사장님이 추천한 바질치아바타를 사와서 친구가 선물로 준 올리브오일에 찍어 먹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맛이다. 이불을 빨아 널고 환기를 하니 봄 기운이 흘러 들어온다.
내가 마음에 든다. 나의 상태와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좋다.
무슨 인간이 고작 이런가 싶다. 호르몬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허탈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또한 호르몬 덕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