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깊었던 2023년을 보내주면서
멜론 홈화면 상단에 '내가 좋아할 음악'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런 문구가 좋다. 내가 자주 듣는 곡을 분석하여 '너의 취향이 이렇구나, 그럼 이 음악도 들어 봐. 좋아할 것 같아!'라고 말해주는 기분이랄까. 즉 내게도 취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구가 좋다. 취향이 없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색깔이 뚜렷한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행이나 평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 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취향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만의 분위기도 있었기에 나도 내 분위기를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너를 보면 커피가 아닌 차(tea)가 생각나
다행히 지금은 취향이 있다. 취향이 생긴 덕분에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삶의 방향과 가치관까지 생겼다. 그전에는 평균 소득, 유행 상품 등 '평균'을 검색했는데 말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어서 평균을 좇으며 안심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인기순위, 베스트상품을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아니까 굳이 살펴보지 않게 된달까? 물론 업무로 보는 건 제외!
다양한 시도를 한 덕분에 취향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정말 이런 게 좋은 걸까?' 의심했고 이 의심을 풀어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다. 함께 혹은 혼자 여행을 가고, 일기를 쓰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면서 말이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2023년 12월 31일이다. 이 콘텐츠도 단골 카페에서 쓰고 있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이지만 특별한 계획은 없다. 평소처럼 글 쓰면서 나와 내 일과를 정리할 뿐이다. 내 일상이 좋다 보니 꼭 특별한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내 취향을 몰랐다면 연말이 가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걸 검색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몰은 언제 봐도 아름다운 거니까 굳이 오늘 보지 않아도 되지, 사람도 너무 많아, 물론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이지만!) 다만 한 해의 마지막이니 천천히 나의 2023년을 돌아보고 싶었다.
자꾸 과거와 비교하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12월은 주로 우울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시간만 버린 느낌이랄까.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에 말이다. 여전히 나이 먹는 게 걱정되긴 하지만 다행히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그만큼 단단해진 거겠지. 그러니 오늘은 우울하지 않다. 그냥 2023년 12월 31일 그 자체로 받아들일 뿐. 하고 싶은 게 많은 편이라 나이 드는 건 싫지만 그래도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건, 성장할 기회가 많다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니까.
올해 목표는 딱 두 가지였다. 꾸준히 글 쓰기, 꾸준히 운동하기. '꾸준히'가 핵심이다. 목표라고 거창하게 세웠다가 다 이루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꼭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에세이만 쓰다가 올해 초부터 소설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소설을 썼다. 에세이 말고도 쓸 수 있는 글이 있지 않을까? 이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사건을 만드는 건 어려웠지만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감정을 풀어내는 일은 재미있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썼다. 더 잘 쓰고 싶단 생각에 필사도 하고 있다.
3개월 전부터 블로그를 시작해서 에세이 외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리뷰하고 있다. 광고 홍보 마케팅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은 내 커리어에 도움 됐다. 즉, 내 목표가 내 삶에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쿼시를 그만두고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1~2번씩 꾸준히 간 덕분에 코어가 조금 건강해졌다. 건강을 챙기는 마음이 생기니 저녁은 조금 먹게 됐고 자연스럽게 야식을 줄였다. (끊지 않고 줄였다) 루테인과 오메가 3 등 영양제도 먹으면서 말이다. 처음엔 목표가 너무 적은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 두 개를 잘 해내기 위해서 해야 할 게 많았다.
목표한 거 외에 한 것도 많다.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운전과 기타를 시작한 것. 운전을 하니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고 덕분에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쌓여갔다. 물건이 많아 집 곳곳에 먼지가 쌓였고 미니멀에 도전 중이다. 굳이 목표하지 않아도 채워지는 내 일상이 참 좋다.
2023년 올해도 힘들었고 많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