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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Jun 12. 2024

너는 방황을 즐기는 변태인 게 분명해

스트레스 해결을 위해 쓴 일기

분명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든 것도 친구들과 대화 나누는 게 버거운 것도. 그냥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숨구멍이 작아진 듯 숨 쉬는 게 힘들었고 별 거 아닌 일에 짜증 내는 일도 많아졌다. 갑자기 변한 내 모습이 낯설지만, 내가 이상해져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 건 쉽지만 그건 나에게 너무 가혹하니까.


문득 일이 풀리지 않는 건 뭔지 고민하게 됐다. 안정적인 직업이 없어서? 연애가 잘 풀리지 않아서? 나를 응원해 주던 친구들의 연락이 뜸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부모님이 내 옆에 없어서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때와는 많이 멀어져 있다. 당연히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에디터와 마케터의 애매한 경력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물경력을 경험하고 작아지는 나를 만났다. 지금 만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가 주는 마음만큼 내가 채우줄 수 없어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정확하게 몰라 힘들어하는 나를 채찍질하는 친구와의 대화도 힘들고 같은 문제로 부모님과 싸우면서 연락을 하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가장 안정적이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가니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지쳤던 것 같다.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지만, 집에만 오면 온몸에 피로도가 밀려오면서 바닥에 누워버렸다. 겨우 유지했던 긴장이 풀린 듯말이다. 이런 피로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계속 무기력함에 지배될 순 없다. 일단, 에디터와 마케터의 애매한 경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분야는 많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애매한 상황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 나는 평생 애매한 사람으로 멈춰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애매한 사람이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나는 '깊이 있는 사람'을 지향하기 때문에 나도 내 업에 있어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을 뿐이다. (자유로운 일을 위해 전문성도 필요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 괜찮은 사람이 있는 곳, 나쁘지 않은 복지를 지닌 회사를 지원했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며 기다리는 중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젠 집중할 때이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압박에 속지 말아야지.


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남자친구와 시간을 갖는 중이다. 만날수록 미안함이 커지는 만큼 내 마음이 많이 떠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걸까.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고 저녁이 되는 게 무서웠다. 좁게 느껴졌던 집이 공허하기도 했고 더 좁게 느껴져 숨이 조이기도 했다. 매일 울면서 왜 우는지, 내 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보는 중이다. 생각이 자꾸 휘발되어 지금은 남자친구에게 편지 쓰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다.


친구들도 만나고 있다. 일부러 멀어지려고 했던 건 아닌데 늘 시간이 없었다. 최근에 그만둔 회사에 야근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 매일 만나지 않더라도 가끔 연락하여 식사를 하거나 술 한 잔 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다. 여전히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 내가 오랜만에 연락해도 반겨줄 진짜 친구가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안부를 전하고 식사하면서 근황을 얘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내 근황이 크게 좋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고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행히 이런 나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진 않는다. "역시 너는 방황을 즐기는 변태인 게 분명해"라는 시선이랄까.


친구들의 말을 듣다 보면 사는 게 참 별거 없단 생각이 든다. 다들 각자 위치에서 힘든 일이 있지만 그 힘든 일을 가족, 친구, 연인과 보내면서 덜어내고 있는 기분이랄까. 답답한 일이 있더라도 그 답답함을 잊게 할 대화가 있고 나의 짜증이 별거 아닌 일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일상의 언어를 듣다 보면, 지금 시절을 잘 보내고 있다고 느낀다. 바빠지면서 매일 하던 연락이 줄어도 서운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나의 힘듦을 가까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다는 배려에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면 외롭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오히려 이 순간이 더 애틋하고 따뜻하다. 오랜만에 연락했을 때 반가움을 느끼고 가볍게 식사하는 게 불편하지 않는 이 정도의 거리가 마음 편하다.


언제 다 회복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기로 남기니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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