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일기
나는 왜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결혼 생각이 없던 내가, 왜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 졌을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도 않은 채 이미 정해진 답을 좇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작년부터였다.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고, 잘 되지 않았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고, 그 이후의 만남들에서는 빨리 내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하늘에서 너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돼!라고 정해주길 바랐달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 놓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설렘보다는 안정적인 환경에 놓이고 싶다는 건. 그때 한 사람을 만났다. 솔직히 첫인상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호기심이 생겼다. "저랑 되게 비슷하신 것 같아요." 그 말 한마디에 그가, 그가 바라본 내가 궁금했다. 본인을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더 잘 보인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내면이 단단한 사람일 거야. 내 생각대로 그는 내 즉흥적인 행동과 말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고,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기로 했다.
몇 개월 뒤,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그는 내게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 확신이 무엇이냐 묻자, 각자 일과 육아로 힘든 건 마찬가지일 텐데, 내가 산후우울증으로 힘듦을 토로했을 때 그 감정을 끝까지 받아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말이었다.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었다며 걱정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결혼할 대상은 혼자서도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는데, 그게 나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움보다 슬펐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한 사람이 감당하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는 일이다. 힘들 때는 서로를 보듬고, 기쁠 때는 그 기쁨을 나누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관계. 하지만 그는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가 아니라 "내가 견딜 수 있을지"를 먼저 말했다. 문제를 함께 겪을 일로 보지 않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앞으로 나는 내 힘듦을 말할 수 없겠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내 힘듦을 삼키며 혼자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외로워졌다. 물론 그럴 사람으로 안 보이지만, 그때는 그럴지도 모르잖아,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말했다. 근데 산후우울증은 남편 하기에 따라 달린 거 아닌가.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왔다. 그 과정을 지켜본 친구들은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주곤 했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불안했던 적도 많지만,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의 격려와 가까운 사람들의 말 한마디 덕분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서 내가 함께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이 아닌 그저 나약한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내가 누구보다 단단하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공황장애까지 왔다. 내려놓는 법을 몰랐고, 항상 적극적이고 진심이었기에 상처받는 순간도 많았다. 즉 의존적인 사람이 아닌 오히려 혼자 너무 많은 걸 해낸 사람이기에 나타나는 결과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이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졌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그는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엔 이 눈물의 의미를 몰랐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눈물은 단순한 서운함이 아니었다. 나는 늘 예뻐야 할 것 같았고,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처럼 연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던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앞뒤 상황을 조합해 보니 그랬다. 기분 탓일 수 있겠지만,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그의 말수가 줄었다. 자주 그런 건 아니지만, 처음엔 나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소금빵 하나면 풀린다고 했지만, 어물쩍 넘어가기만 했다.
최근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을 때 그에게 말했다. 말하면서도 내 부정적인 감정이 그에게로 옮겨갈까 봐 미안했고, 그래도 잘 되겠지, 하면서 스스로 말을 정리했다. 부정적인 말에 나 스스로가 지배당하지 않도록, 상대에게 내가 너무 부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만 말해야지, 싶으면서도 지금의 회사는 나에게 가장 큰 문제였고,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마무리할 때마다 '잘 쉬면서 회사 알아봐야지'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나는 발견했다. '나, 그렇게 약하지 않아!'를 자꾸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나를, 나 스스로가 지켜내려고 하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도 있었다. 근데 그의 말을 들었을 때, 회사 얘기를 괜히 꺼냈다고 생각했다. 그냥 혼자만 알고 있을 걸.
물론 회사의 힘듦과 육아의 힘듦은 다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나의 잦은 이직으로 봤을 때 내가 육아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유독 아팠던 이유는, 예전에 그가 여러 일을 해온 내게 대단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신기함과 다름이 어느 순간 불안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내가 이직을 한 건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 버티는 것보다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해야 했던 순간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해야 했던 선택의 결과였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직접 발로 뛰는 당찬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그 과정에서 불안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내가 한 선택에 후회가 없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물론 그가 내가 겪은 모든 상황을 알진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시간을 근거로 나를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한 게 내가 살아온 시간까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게 되었다. 나는 왜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왜 이 사람이랑 하려고 했던 걸까. 단지 귀찮음 때문만은 아닐 텐데.
다음날 아침, 릴스를 보다가 울었다. 엄마가 아기에게 “왜 이렇게 예뻐?” 하며 웃고,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자기에게도 그렇게 해달라며 웃는 장면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예뻐하는 모습. 그 소소한 행복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마음이 아팠다. 내가 바라는 건 거창한 미래가 아니다. 힘든 하루 끝에 서로를 아껴주고, 약해져도 버려지지 않는 관계, 문제가 생겼을 때 도망치지 않고 “같이 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그 영상을 보니, 어제 나눈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 이미 나를 그렇게 정의한 상태에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잔나비 노래 중 외딴섬 로맨틱에서 ‘기꺼이 함께 가주지’라는 가사를 좋아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어디를 가든 항상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을 원해서일까.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좋아한다. 한때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내가 찾던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픈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이 관계를 정의 내리지 않으려 한다. 지금 그 결론을 내리기보다 내 회복이 먼저이다. 일단, 나를 지켜야겠다. 지친 마음이 만든 결정에 나를 맡기지 않기 위해. 내가 회복되었을 때, 서로가 서로를 지킬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정리해 보면, 그와의 대화가 슬펐던 이유는 분명하다. 사랑을 하고 있는데도 혼자가 되는 기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가 견뎌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 그러니 만약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를 회복시키는데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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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를 쓴 지도 꽤 지났다. 그 사이 일도 건강도 하나둘 해결되고 있다. 2월 초, 오랜만에 영상 없이 낮잠을 잤다. 소리가 없으면 잠들지 못한 탓에 항상 무언가를 틀어놓고 잔다. 소리 없이 잔 잠은 달콤했고 평화로웠고 편안했다. 내가 바라던 안정감이었다. 드디어 일이 풀리려나보다. 그동안 고생했다며 나를 토닥였다. 하나씩 해결되다 보니 외면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아마 위에 쓴 일기겠지. 난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다. 언젠간 해결해야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미루고 싶었다.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둘 해결해 가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우린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마음이 쿵하고 울리기도 했고, 아무렇지 않기도 했다.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지, 이 관계가 언젠가 끝날 거라는 걸 알았던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서히 변해가는 상대의 마음을 볼 때마다 마음 아팠다. 종일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고, 최대한 해결해 보고 싶은 마음에 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100% 맞는 사람은 없고, 한창 맞춰나가는 단계이니, 부딪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잘해주려고 했고, 노력하는 마음도 알지만, 원래 그런 성향을 가진 그와 나는 생각보다 맞지 않았다. 맞추려는 노력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항상 같은 문제로 다퉜다. 그와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이 달라서 대화가 겉돌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서로 고집이 강했다. 내가 너무 압박한 건 아닌가 싶어서 애써 이해해 보려 했다. 그럼에도 계속 부딪혔다. 내가 지친 것처럼 그도 지칠까 봐 걱정됐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계속 타이밍이 어긋났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는 서서히 지쳐가는 게 보였고, 그의 행동에 나도 지쳤다. 이제는 말하는 것도 버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예민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산후우울증에 대한 괘씸함인지, 조금씩 변해가는 그의 태도의 불안 때문인지, 사귀기 전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관과 다르다는 말에 당황스러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실수에 계속 화가 났다. 배려가 없게 느껴졌다. 충분히 알고 있을 배려인데, 계속 나를 배제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차분히 말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억압을 싫어하고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보다 자유와 편함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난 여전히 무리한 걸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나기 전에는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고 했고, 그는 자신 있다고 했다. 만나면서 조금씩 어긋났고 낮아진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말해가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니 접점을 찾는 게 어려웠다.
사실 그와 만나는 마지막 날, 옷을 여러 번 갈아입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입어줬으면 하는 옷을 입었다. 헤어짐을 각오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맞춰갈 생각이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말들은 두서없이 입 밖으로 나왔고 애매하게 끝이 났다. 오고 가는 말이 없이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예전에는 서운한 감정을 말하고 풀어내며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는데, 요즘엔 서로가 말을 아꼈다. 의견이 맞지 않아도 웃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가 무심코 던진 말들을 상처를 받았기에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졌다. 피곤할 테니까, 쉬고 싶을 테니까, 이 말을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질 거 같으니까.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동안 오해가 쌓이고 지치기 시작했다. 예민해진 상태였기에 뭐 하나라도 실수하면 크게 다가왔다. 무언가 답답한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아직까진 함께 해결해 가고 싶었다. 지치더라도 미래를 약속했던 사이이기에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린 실패했다.
그는 나를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했다. 전날 내가 느낀 서운함에 대한 사과인 줄 알았다.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기에 다시 잘해보자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어짐을 결심했던 내 마음에 미안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처음엔 내가 안쓰러웠는데 그날은 그도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 포옹은 헤어짐을 위한 사과였다. 진짜 의미를 알고 나서는 괘씸하기도 했다. 그의 마음을 알아야 나도 그 선을 찾아갈 텐데, 그러지 못했다. 함께 노력하지 않고 놓아버리는 게 밉기도 했다. 그래도 그간 마음 고생하며 힘들어서 그런지 꽤 괜찮다. 회사를 다니면서 심해졌던 공황장애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이건 내가 힘들 때마다 내 옆을 지켜주려고 했던 그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내가 혼자 남아도 괜찮은 시기까지 기다려준 것 같다. 덕분에 안전하게 이별했고, 못되게 군 날도 많았기에 충분히 미워했고, 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다음 스텝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속상하고 아쉽지만 후련한 마음도 크다. 이젠 훌훌 털어버리고 각자 잘 살기 바라며.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