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날 지하철에서 눈물이 나왔다

뒤늦게 쓰는 퇴사 일기

by 매실

최근 면역력이 떨어졌다. 몸이 안 좋으니까 입술포진부터 감기, 불면증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진 게 아니라 내가 내 상태를 계속 외면해서 몸이 성내고 있는 거라는 걸. 그렇기에 내 컨디션을 회복하는 방법은 휴식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휴식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 모든 걸 잊고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충분한 장소와 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타이밍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회사가 경영악화로 올해까지만 운영하기로 했다. 갑자기 소식을 들었기에 당황스러움도 있었지만, 다행이라는 마음이 더 컸다. 거기다 실업급여도 나오니 휴식을 취하며 일을 알아봐도 된다. 요즘 취업이 어렵다곤 하지만, 먼 미래의 걱정까지 끌어올 에너지 따윈 없었다. 퇴사 일이 정해졌는데도 일은 많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일을 하다 보니 마지막 출근날이 왔다.


랜덤으로 재생되는 플레이리스트에서 past lives가 들렸다. 릴스에서 많이 들었던 곡으로, 주로 힘겹게 또는 쓸쓸하게 살아가는 영상 BGM으로 많이 쓰인다. 그래서일까 그 음악을 듣고 있는 내가 화면 속에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음악은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이 음악을 들었을 때 가장 안쓰러웠던 날이 생각났다.

작년 이맘때, 지하철 파업이 있던 날이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공황장애를 다시 느꼈다.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 쉬는 게 어려워서 패딩을 벗었다. 생각을 돌리기 위해 오늘 뭐 먹지, 퇴근하고 운동 갈까? 같은 질문으로 돌렸지만, 소용없었다. 그 당시에는 지하철 소리가 무서워서 귀를 막았고, 숨을 쉬어도 풀리지 않은 답답함이 있었다. 그 공포가 또다시 오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공황장애가 있는 상태로, 1년 7개월을 버텼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짠했다. 아침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건 좋지만, 거기에 어떤 고통이 있을지 알면서도 열심히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퇴근을 늦게 하거나 운동을 가면서 최대한 사람 많은 시간은 피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열심히 출근을 했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다. 그 사실이 대견하기보단 안쓰러웠다.


공과금, 미래 자산 등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끈기 없는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싫었다. 그간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할 때 내 선택에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끈기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힘들다며 바로 그만두진 않았다. 내 나름의 방법으로 말해보고 매뉴얼을 만들면서 타협도 해봤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거나 똑같은 문제가 발생되어 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고 내린 결정인데도, 마치 내가 끈기가 부족하여 생긴 결과가 되는 게 싫었다. 어딜 가나 힘들기에 버텨내야 하는 건 있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만둔다는 건 그 선을 넘었기에 하는 말인데, 나약하다고 비꼬니, 억울했다. 그땐 그게 싫어서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생각이 많았다.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는 것도 싫었지만, 정말 내가 나약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고,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해졌다고 믿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까짓 억울함, 답답함 등을 참아보지 뭐!’ 이렇게 생각하려 했다. 버티는 과정 속에서도 성장할 요소도 분명 있을 테니. 또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그나마 익숙한 환경에서 버텨보자고 말이다. 그만두는 방법이 아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런 애쓰는 마음 덕분에 칭찬받은 적도 있었고, 내가 형편없음을 느끼는 날도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고 진하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두세 배 받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의 시선 속에 살았던 것 같다.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높은 기준 속에서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나를 응원해 준 사람이 더 많았는데, 나는 그들을 잊고 나를 비난한 사람 말을 더 열심히 들었다.


이 모든 게 지나갈 때까지, 절망이 지쳐 사라질 때까지, 잠이나 위안 같은 무언가가 내게 손짓할 때까지. 언제나 또다시 이런 나날들이, 불안과 혐오와 절망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을 테고 여전히 삶을 사랑하리라

- <비 오는 날> 헤르만 헤세 중에서


사실 버티기 이전까지만 해도 일에 진심이었다.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일에 진심인 사람은 더 쉽게 번아웃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자주 지치곤 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면 당장 나가야 할 생활비들이 막막했고, 그 현실을 보며 꾸역꾸역 다녔다. 그렇게 1년 7개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수많은 장면이 스치지만 그중에서도 대표님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칭찬에 인색하다고 들어서인지,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그간 부딪히는 일은 많았어도 뒤끝은 없었고,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맞춰가려는 노력은 분명 존재했다. 힘들어서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다가도, 그런 말 한마디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 다시 잘해보고 싶어졌다. 퇴사를 고민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열심히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었다.


물론 하고 싶은 퇴사이긴 했다. 다만, 하고 싶어서 한 퇴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끝이 다소 씁쓸하고 아쉽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기에 후회는 남지 않는다.

2026년이 왔다. 이제는 조금 좋은 일들이 펼쳐질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는 또 나만의 답을 찾아가겠지. 그래서 약간의 불안은 있어도 딱히 걱정되지는 않는다. 경험상,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된 일은 없었고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갈 때마다 오히려 좋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내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려 한다. 그간 자주 미뤘지만, 거창하지 않은 것들을 하면서 잘 쉬고 싶다.


법률스님이 어떤 일이든 죽기 살기로 하기보다 심심하니까 해봐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을 가져야 오래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시작도 전에 지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그 무게가 우리를 멈추게 한다는 의미였다. 잘해봐야지보다 해보자라는 태도가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올해에는 힘 빼는 연습을 해야겠다. 번아웃도 공황장애도 좀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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