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카메라 속, 엄마의 일회용 카메라

by 매실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다들 교실 의자에 앉아 있고 창문 밖으로는 자식의 모습을 보려는 부모님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약간의 긴장감, 아쉬움, 후련함 등의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우리에게 잘 지내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다. 이별엔 적응되지 않았던 어린 나이였던 터라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괜히 울적해져 있었다. 물론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했던 것도 아니고 친한 친구만 지냈던 터라 큰 아쉬움은 없었지만. 아마 스쳐가는 인연들이 꽤나 씁쓸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감성에 젖어있을 때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나를 툭툭 쳤다.

내가 뒤돌아보자 친구가 "저기 너네 엄마 계셔."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고개를 돌려 엄마가 있는 쪽을 봤다. 디지털카메라와 대포 카메라 사이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엄마를 말이다.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엄마에게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아, 그 카메라로 찍지 말라고." 못 된 마음이라는 걸, 잘못된 마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부끄러웠다.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엄마가, 어쩌면 내 형편이. 엄마가 카메라를 또 들진 않았는지, 계속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카메라를 들지 않고 나를 보는 엄마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자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게 뭐라고. 나의 모습을 찍고 싶었던 건 다른 부모님과 같은 마음일 텐데, 나도 다른 친구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의 시선에 더 신경 쓰였던 중학생이었다.

엄마의 카메라 덕분에 울적한 감정이 깨졌다. 그때 한 친구가 보여주고 싶은 영상이 있다며 교탁으로 갔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셀카 한두 장을 부탁했던 친구였다. 영상에는 잔잔한 음악과 동시에 친구들 사진이 하나씩 재생되었다. 한두 명씩 눈물을 훔치는 친구들도 있었다. 졸업식날과 딱 어울리는 음악과 영상이었다. 한 명씩 셀카가 나올 때마다 친구들은 환호성이 들렸다. 나는 그 환호성이 들릴 때마다 내 사진에는 반응이 없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내 차례가 오지 않기를, 아니면 빨리 내 차례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던 편도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있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또다시 이런 감동스러운 감정을 만끽하기 어려웠다.

어릴 때의 난 집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밖에서 노는 아이였다고 했다. 바지를 입고 뛰어다닌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매일 마당이 울려가라 소리치며 놀았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언제 이렇게 소심한 아이가 되었을까. 친구들이 내 사진에 반응이 없는 걸 아는 것도 초라하게 느껴지겠지만, 엄마가 그 모습을 볼까 봐 더 걱정되었던 것 같다.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그날의 감정이 꽤나 컸는지 중학생 하면 이날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내 주변엔 나서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누가 봐도 원하는 것 같은데,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당시에도 그 친구는 반장이 되고 싶은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라고 했다. 아마 친구들이 본인을 뽑아주지 않으면 상처받을 수 있으니까 자신을 지키는 마음에서 부정하지 않았나 싶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인 건데, 그때는 그 마음을 삐뚤게 생각했다. 사실, 그 친구는 착했다. 모든 것에 손을 내밀어줬고 자신이 피해 보는 것도 스스럼없었다. 친구들을 웃기기 위해 오버하기도 했다. 아마 난 그런 행동이 오글거렸던 것 같다. 분명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고 그 친구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하지 않았다. 그 숨은 의도를 꺼내 보이고 싶기도 했다. 그런 오버스러운 태도, 그런 거짓된 행동을 하는 그 친구가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친구를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날들도 많았다.

같은 친구라도 그런 마음을 알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사람도 있다. 거짓말을 인정하라는 뜻에서, 좀 더 솔직해지라는 뜻에서 말이다. 나는 후자였다. 어쩌면 진심일 수 있었던 그 친구의 마음을 나 혼자서 다르게 생각했다. 나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를 응원해 줬다. 나중에 이런 문제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행동과 말이 오버스러운 점도 있지만, 쨋든 원하는 걸 알았으니 그냥 해주면 되지,라고 말했다. 응원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그래서 자기도 장난은 치지만, 나쁜 의도로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를 깎아내리고 싶었다. 거짓이라는 걸 당장 말하라고 말이다.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질투였을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봤으면 좋겠는데, 그 시선을 자꾸만 가져가려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경쟁했던 걸까? 속이 훤히 보이는데 아니라고 하는 게 싫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던 것 같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고, 그 중심에 서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용기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 마음을 감추면서 드러내는 친구를 가식이라고 규정해 버렸던 것 같다. 같은 마음인데 너는 되고 나는 안 되면 너무 서글플 테니까. 차라리 반장 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잖아!라는 느낌이랄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방어를 했던 것 같다. 솔직하지 못한 타인을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솔직해지고 싶은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소속감을 더 크게 느낀다. 내가 잘 지내는 부류가 트렌디하면 나 역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본인도 잘 안다. 입학식 때 어떤 친구에게 다가가면 친해질 수 있을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누구인지. 그렇기에 나는 나와 비슷한 소심한 친구에게 다가갔고 같이 조용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그 사이에서도 버림받지 않으려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며 말이다. 그 당시에 나는 나를 잘 알았다. 그렇기에 내 사진을 보고도 모두가 조용할 거라는 걸 예상했고 거기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그때 나는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마음이 20대까지 이어졌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 버림받았을 때, 나와 같은 정도의 친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 상처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고, 정말 스쳐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좀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관계를 맺고 상처받는 게 두렵다. 버림받는 게 싫어서 자꾸만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잘해야 하고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선 내가 애써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손을 내밀고 싶지만 내밀고 싶지 않다. 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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