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들여다 보기
퇴근길 신도림역, 모두가 1호선 지하철을 탈 때 나는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멀리서 밀지 마세요,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이어폰의 음악 소리를 키웠다.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소음을 차단하려 애썼고 긴장한 탓에 이마의 주름은 깊어졌다. 내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집에는 가야 했지만, 지하철은 탈 수 없었다. 지하철이 떠난 소리와 바닥의 울림을 듣고서야 눈을 떴다. 지하철을 타지 못한 사람들은 줄을 지키고 있었다. 1분이 지났을까? 몇 초 단위로 줄은 길어졌고 그렇게 난, 다음 지하철도 보냈다.
이때까지만해도 내가 좁은 공간에만 있어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좁은 곳에 갇혔다고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내 숨을 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빙그레 빨대로 겨우 숨을 쉬는 기분이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다들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눈을 감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 혼자 벌버둥치는 기분이다. 내 목을 조르는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기분. 나는 놀라서 지하철을 타자마자 내렸다. 그 뒤로 좁은 공간을 피해야만 했다. 질병으로 말하자면 폐소공포증. 내 증상을 처음 인지했을 땐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했고 지하철 급행이 아닌 일반행을 타면서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를 이용했다. 그렇게 5, 6년이 지났을까. 자연스럽게 폐소공포증이 나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하철 파업이 있었던 날, 폐소공포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업이 있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던 터라 아무 의심 없이 평소에 타던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숨통을 막았던 그 공포감이 다시 떠올랐다. 지하철이 잘 오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서로를 밀고 또 밀었다. 이어폰 속으로 사람들의 짜증이 들려서 고개를 들었을 때, 내가 많은 인파 속에 있다는 걸 인지해 버렸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가겠다며 말했지만, 사람들이 계속 밀고 들어오는 탓에 나갈 틈이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하철에 갇혔다. 호흡을 깊게 마시지도 않았는데, 이미 물속에 빠진 듯 숨을 쉬기 어려웠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 호흡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이 와중에 사람들은 더 타기 위해 애썼으며 지하철 문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고 출발하지 않았다.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더 나쁜 생각으로 빠지지 않도록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나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켜서 이어폰 소리를 키웠다. 그렇게 해도 나아지지 않아, 패널들의 말을 따라 했다. 나는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이동하면서, 괜찮아 두 정거장만 참으면 돼, 괜찮아 이동하고 있잖아라며 나를 달랬다. 사람들이 빠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호흡을 했다. 잠수를 마치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말이다.
그 뒤로 나는 다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요즘은 퇴근 시간을 피하려 회사 근처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공포감은 이전보다 더 커져있었기에 이제 생각만 해도 답답했고 무서웠다. 신호등 앞에서 정신의학과를 발견했고, 그때부터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을 통해 알았다. 내가 폐소공포증이 아니라 공황장애라는 사실을 말이다. 폐소공포증이라고 예상만 했는데, 내 병명이 확실해지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좁은 곳이 아닌데도, 숨을 크게 들이마시어도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은 답답함이 이와 연결되었던 걸까. 그렇다면 언제부터였을까.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람과 헤어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어긋났을 때, 실수했을 때의 질타, 상처 등이 하나씩 떠올랐다.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마음속에서 있는 건가. 그러다 내가 만든 세상에 나를 밀어놓고 그 속에서 나를 방지해 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숨을 쉬어도 제대로 쉬지 못한 기분이 든 건 아닐까?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스스로를 위로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모난 내 모습조차도 내가 만든 나였기에, 나는 나를 미워할 수 없다. 상담선생님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내 마음과 마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아무도 나를 쫓아 오지도 않으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고, 더는 사람과 시선을 피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숨 쉬기 어려운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그래서 상담받으면서 과거를 하나씩 곱씹으며 내가 공황장애가 생긴 원인을 찾고 있다. 선생님과 말하면서 숨이 더 막혀올 때도 있고 눈물이 날 때도 있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주저할 때도 있다. 외면했던 내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곯아 있어서 이 상처를 내가 걷어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제부터 내가 나를 가두며 살게 되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고 싶다. 내가 만든 세상 안에 나를 가뒀다면 나를 꺼낼 수 있는 사람도 나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면, 해결 방법을 알 수 있겠지. 만약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그 자체로 인정해 주려 한다. 시간이 걸려도, 끝내 원인을 찾지 못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