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과 어울리는 답인가?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잤다. 다음날 뭐 먹을지 정하기로 했는데,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는 친구가 잠에 들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나와 친구들이 괜찮은 식당을 찾아 카톡방에 공유하기로 했다. 나는 네이버 지도를 열어 주변 식당을 찾다가 칼국수를 발견했다. 그 순간 칼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이렇게 발까지 시린 날에는 콧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따뜻한 칼국수가 생각난다. 이 주변에서 맛있게 먹었던 칼국수 가게를 찾아 링크를 공유했다. 그러다 한 명이 '그냥 내일 찾을까?'라고 말했다. 은연중에 우리가 찾은 메뉴가 선정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는 친구가 우리가 찾은 메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칼국수가 먹고 싶어 졌기에 '거리가 있지만, 맛있는 집이야.'이라고 조용히 어필했다. 내일이 되면 내 의견에 한 표씩 던져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칼국수 맛있겠다,라는 답이 나오길 바라며 괜히 네이버 지도를 확대했다가 축소했다. 내 바람과 달리 반응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먹고 싶지 않은데, 괜히 내 의견을 내세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다른 곳은 뭐가 있을까? 그냥 내일 찾자.”라고 말했다.
혼자라면 선택은 쉽지만, 함께라면 선택이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거부하며 모두가 납득할 만한 답변을 찾아낸다. '뭘 먹어도 괜찮긴 해! 나 진짜 괜찮아' 내가 상대의 의견이 별로일 때가 있는 것처럼 상대 역시 내 의견이 별로 일 수도 있는데, 괜히 불편함을 주기 싫었다. 그렇기에 반응이 떨떠름하다 싶으면 먹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 채 다른 의견을 제안하했다. 원래 내 의견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정말 괜찮다면서. 다음날 역시나 우리가 찾은 메뉴들은 탈락되었다. 사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의견이 수용되지 않았던 날이 많아서 그런 건지, 수용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 내가 좋아하는 친구라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유를 떠나 나와 달리 친구들의 반응이 애매해도 가고 싶은 이유를 만들며 설득하는 게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할 수 있을까.
친구들 무리에서 각자 담당하는 역할이 있다. 누군가 딱 정해주지 않아도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맡게 되는 역할 같은 거 말이다. 의견을 잘 말하는 친구는 검색을 잘하고 가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에 주로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일까, 그 친구가 제시한 의견이 별로일 때도 있지만, 항상 좋다고 말했다. 그 역할에 힘을 실어줘야 할 것 같았다. 거절한다고 해서 내 의견으로 모이는 건 아니니까. 그럼, 나는 어떤 역할일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 함께 다니기 편한 친구일까. 괜히 궁금해졌다. (물론 편한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난 30대 중반인데도 화장을 잘 못한다. 화장을 잘하는 친구들도 유튜브를 보면서 화장을 따라 하곤 하던데, 난 그런 에너지가 없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친구들이 구매하는 화장품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올리브영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화장품을 고를 때도 눈여겨보곤 한다. 나도 유튜브 보면서 화징을 따라 하기도 했고, 릴스에 화장법이 뜨면 즉흥으로 화장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화장에 관심 없는 척했다. 내가 화장에 관심을 갖는 게 낯간지럽다는 생각 때문에. 어설프게 사람들이 하는 거 따라 한다고 속닥거릴까 봐.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화장을 했다. 예뻤다. 교복도 줄여 입고 유행을 잘 만들고 따라 하는 것 같았다. 부러웠다. 그렇다면 나도 따라 하면 되는데, 어설프게 화장한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비웃을까 봐 관심 없는 척했다. 그 시선을 감당하기보다 그냥 관심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쉬웠으니까. 친구들이 화장 안 해서 피부가 좋다고 말할 때마다 화장과 더 멀어졌다. 그 시선이 익숙하다 보니, 이제는 화장을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귀찮음이 더 커졌다. 원래 관심 없었던 것처럼. 지금 화장을 잘해서 뭐 해.
정리하자면, 나는 내 의견이 거절당할까 봐, 보이는 이미지가 신경 쓰여 항상 괜찮은 척하며 살았다. 항상 괜찮고 관심 없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뭘 하든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걸 알기에 여기서 더 나서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막아세웠다. 화장을 하고 싶어도 애초에 화장에 관심 없는 사람처럼. 그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시선 속에 사로잡혀서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너 이거 좋아해?,라는 질문에 글쎄라고 답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구분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딱히 나쁘지 않은 거 같기도 한데, 그럼 좋은 건가. 생각이 조금 길어진다고 싶을 때 괜찮은 것 같다고 답했다. 좋은지를 물었는데 뭔가 엉뚱한 대답을 한 기분이다. 명확하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