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상대의 말이 잊히지 않을 때

by 매실

오늘도 상대방의 말을 곱씹었다. 원래 안 그러던 친구인데, 갑자기 왜 이런 말을 꺼낸 거지? 대화의 흐름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거나 평소와 다른 말투로 말할 때 기어이 눈치를 채고 왜 그런지 답을 찾으려 한다. 이런 생각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내가 말실수했나. 오랜 생각 끝에 내가 문제인 걸로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상대의 눈치를 살피고 혹시 내가 실수를 했다면 만회할 기회를 찾는다. 더 오버스럽게 리액션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어설픈 말들을 꺼내면서 말이다.

물론, 아무리 이유를 찾으려 해도 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상대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왜 그래? 그러면 상대의 반응은 뭐가?이다. 본인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번 경험하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의미 없이 건네는 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놈의 성격이 문제인 걸까. 경험하고 경험해도 이런 상황이 오면 또다시 내 탓으로 돌린다. 뭐가 문제일까. 물론 대수롭지 않게 말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마련이니 상대와 대화할 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말이 아니라 상황일 때도 있다. 나같이 예민한 사람들은 평소와 다른 상대의 분위기를 빠르게 캐치한다. 맞다. 나도 내가 참 피곤하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보이면 어떻게 하면 상대의 기분이 좋아질지를 고민한다. 나로 인해 기분이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친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생긴 것처럼.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 상대의 말에 영향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가 안 좋아지는 감정도 버겁고 지친다. '상대의 말을 잊는 법'을 검색해도 내가 원하는 답을 주는 콘텐츠는 없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1학년 때는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소심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친구들이었다. 2학년이 되자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혼자 앉아 있는 내게 한 친구가 다가왔고, 그 친구 덕분에 다른 친구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2학년 때는 1학년 때보다 모두가 더 친한 사이가 된 듯했다. 더 끈끈했다고 해야 하나. 성인이 되어 다른 친구들과 학창 시절을 말할 때 같은 반에 왕따가 있었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나는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한 친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친구들 대부분이 착했고 서로서로 잘 지내려 했다. 그렇기에 내가 친구들을 좋아하는 만큼 친구들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우연히 나를 제외하고 친구들끼리 여행 계획을 세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 한 친구가 나를 뺀 게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었는지 계속 같이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나를 원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눈치 없이 여기에 오더라, 와 같이 내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기 싫었던 걸까. 내가 아닌 다른 친구들을 욕하는 경우도 줄곧 봐왔기에 그게 내가 되는 게 싫기도 했다. 아마 이때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도 저 친구가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잖아,라고 생각하며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나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건 아니야,라고 무언가의 방어막을 세우면 상처를 덜 받을 거라 생각했다. 쉽게 손을 내어주지만, 상처받을까 봐 무서워서 언제든 손을 뺄 수 있도록 꽉쥐지 않은 느낌이랄까.


소속감이 중요했던 시기에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상처가 꽤나 컸나 보다. 상대와 대화하다 갑자기 표정이 좋지 않으면 내 잘못을 되돌아보거나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 봐 조마조마한다. 여전히 나만 빼고 떠났던 그 여행의 이유를 알지 못해서, 문제는 내 안에 있었던 건 아닐까 자문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모든 관계에서 조심스러워진다. 이미 내게는 좋은 친구가 있고, 나도 좋은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할 능력이 생겼으니 더는 그들의 눈빛과 행동에 이끌려 다니니 말자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마음과 달리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나도 잘 안다. 불필요한 감정을 스스로 소모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내가 안정된 소속감을 원하는 걸까? 그 누구도 나를 버리지 않은 환경에서 내가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할 수 있도록.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좋은 사람이기에 나를 미워한다면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것 같다. 이유 없이 좋아하고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되돌리다가 되려 상처받고 지친 경우도 많았다. 잘하려는 마음,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마음 모두 나를 좋아해 달라고 애쓰는 마음 같아서 나도 내가 짠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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