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미안할까?

by 매실

세 명이서 밥을 먹으러 갔다. 평소처럼 잘 놀다가 갑자기 한 친구가 말실수를 했고, 그로 인해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 가운데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 보며 잘 풀어보려 했지만, 결국 새우등이 터졌다. "그러니까 내가 오기 싫다고 했잖아." 말실수한 사람은 오히려 나를 탓했다. 억지로 오자고 한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했을 뿐인데. 그 말을 듣자 방금까지 즐거웠던 내 기분마저 엉망이 되었다. 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속으로만 되뇌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이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화를 낸 친구와 말실수로 상처받은 친구를 달랬다. 상대가 위와 같이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가 서먹해지면, 괜히 모이자고 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하고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싸울 일도 없었을 텐데 하면서. 사실 20대 이후로 이런 경우는 드물다. 그때의 나는, 그런 관계마저도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라고 믿었다. 상처받는 일조차 감수해야 하는 책임처럼 느꼈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나는 나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얻은 건 좋아하고 피해 주는 건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성향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친구가 고민이 있다며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한테 고민을 털어놓은 게 기분 좋았다. 그만큼 나는 신뢰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구나. 그 친구가 내게 준 마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내 마음을 이용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어느새 나는 속이기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 결과가 씁쓸하지만, 사실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가 상처받을까 봐 나를 걱정했고, 나를 지킨다는 이유로 나서려는 내 마음을 막았다. 그렇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도 주변 눈치를 보면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두 회사에 합격했다. 감사하게도 회사 측에서는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었다. 합격 결과를 들었을 때 ‘내가 해오던 대로만 성실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자꾸만 불안이 올라왔다. 회사가 나에 대해 기대를 했을 텐데, 그 기대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사실은 내 능력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가장 아픈데,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혹시 나 때문에 회사가 손해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었다. 나 대신 다른 사람이 뽑혔어야 했던 건 아닐까, 나를 뽑은 걸 후회하지는 않을까. 그런 나를 보고 친구는 심각하게 실수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 경우는 없다. 오히려 나를 신뢰하고 칭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내 능력을 내가 인정해 줘도 좋을 텐데, 나는 그 칭찬의 무게를 더 크게 느끼고 부담스러워했다. 자꾸만 실망스러울까 봐 전전긍긍했다.


돌아보면,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피해를 먼저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고민해도 늦지 않고, 이미 벌어진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 어쩌면 지금 이 불안 자체가, 나를 제자리에 머물게 하는 또 다른 피해인지도 모른다. 상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피해를 주었다면 사과하면 된다. 잘못했다면 고치면 된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직 오지 않은 불편함을 미리 끌어안고 자신을 옥죄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나를 지키지 못해 생기는 상처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시간이 지나도 상대의 말이 잊히지 않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