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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Jan 30. 2023

관상 과학을 경험한 금요일

[아무튼 금요일]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출근길에 꽃을 산다. 일이 많을 때, 기분이 좋을 때, 야근 많은 시기에 기분 전환을 위해 종종. 출근 전부터(사실을 목요일 퇴근부터) 야근각이라 생각하고 출근하던 어느 금요일. 이왕 하는 야근 기분 좋게 하고 싶어서 회사 가는 길에 오랜만에 꽃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회사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버스로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지하철에 꽃집이 하나 있고, 버스 정류장에 꽃집이 하나 있다.


그날은 버스 정류장 꽃집을 가기로 했다. 정류장 바로 뒤에 있는 상가 건물 꽃집이라 매일 출근길 이곳을 지나며 ‘예쁜 꽃들이 여기도 많네’ 생각한 곳이었다. 상가 입구를 넘어 인도까지 꽃을 꺼내 놓는 이 꽃집의 이름은 ‘아줌마 꽃’이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썼던 것 같은 투박한 초록, 빨강의 통에 같은 종류의 꽃을 다발 채 꽂아 놓은 꽃집. 출근길 진열돼 있던 꽃을 보며 즐겁게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이른 출근길에도 벌써 인도밖으로 나와 웃고 있는 꽃들을 보며 성실하고 인상 좋은 아줌마일 것이라 종종 상상했다. 열 개 남짓의 꽃 통?! 옆에는 고딕체 써 붙여 놓은 안내문이 있다. ‘꽃 사실 분 눈으로 골라서 상가 안으로 들어오세요’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꾸밈 하나 없는 디자인과 기교 없는 말투. 괜히 정이 가서 언젠가 여기서 사봐야지 생각했던 곳을 오늘에서야 드디어 산다니, 괜히 설레기도 했다.


버스 도착까지 시간도 여유로웠다. '오늘은 꽃을 사는 날'이라고 누군가 도와주듯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이 기분. 길거리에 있는 꽃을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주색의 작약을 골랐다. 아직 봉오리라 피지 않은 작약으로 사서 회사에서 피는 걸 봐야지 생각했다. 경고문 같은 안내판에 서 있는 대로 함부로 만지지 않고, 눈으로 골라서 상가 안으로 들어가 ‘아줌마 꽃’의 문을 열었다.


“사장님 혹시 꽃 한 송이씩도 파시나요? 저 밖에 있는 작약 한 송이 사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한껏 들뜬 마음과 즐거운 말투로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과 인상은 정말 의외였다. 매일 아침 세팅된 꽃을 보며 상상한 성실한 아줌마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세상 모든 불만을 가진듯한 인상의 아줌마가 뒤를 돌며 인상을 쓰며 “한 송이요? 한 송이 팔긴 하는데 에휴, 뭐 산다고요? 가봐요 가봐” 이러시며 밖으로 떠밀었다. 잠깐의 기분 나쁨이 나에게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지만, 꽃만 사면 해결될 것 같아 빨리 사고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자줏빛의 작약 중 내가 피워 보고 싶은 작약을 가리키며 “이걸로 주세요”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아줌마는 “다 똑같아요”라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자약을 반쯤 뽑아 올렸다. 통에서 작약이 다 올라오기 전에 서둘러 봉우리에서 직접 피워 보고 싶어 그런다고 설명했다. 돌아오는 건 다시 한숨뿐. 원래 성격대로 라면 벌써 ‘안 사요’ 했을 텐데 오늘을 꼭 꽃을 사고 싶단 생각을 했었으니 빨리 결제만 하고 튀는 방향으로 마음을 틀었다.


5천원이란 말에 결제를 하려고 카드를 내미는 순간 화룡점정을 찍는 아줌마의 한 마디는 꽃도 샀지만, 최악의 하루를 시작하기 아주 좋은 말이었다. “아가씨 한 송이 사면서 카드 내는 거 좀 그렇지 않아요? 오늘 개시인데 한 송이에 카드라니 에휴. 한 송이라 포장을 못해줘요. 그냥 이렇게 가져가세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예쁘게 포장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면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그 뒤로하는 넋두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가게를 나왔다.


꽃집을 처음 나와서 들었던 생각은 ‘관상 is science’. 처음 봤을 때도 인상이 날카롭다, 예리하다, 무섭다가 아니라 정말 처음 봤을 때 아.. 했을 정도로 인상이 참.. 그랬다. 말을 섞어본 사람 중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인상이 우락부락했다. 더 이미지화시켜 보자면 화, 분노, 짜증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인상이었다. 그래도 그냥 삶의 찌들어서 그러시겠지, 아침이라 피곤해서 그렇겠지라는 마음으로 넘겼는데 그게 아니라 살아온 성격과 마음이 반영된 인상이라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못된 말, 행동을 할 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이 있다. “너 그렇게 못되게 굴면 다 늙어서 얼굴로 나타난다? 선한 맘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금 양보하며 사는 게 늙어서도 훨씬 예쁠걸?” 솔직히 여태껏 흘려들었다. 하지만 오늘 엄마 말처럼 실현된, 태도가 반영된 얼굴을 마주했다. 사람이 기억의 동물이라면, 사람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 자주 지어온 표정과 감정이 얼굴 근육으로 굳는 것 같은. '어른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듯 꽃집 아줌마를 보며 나도 그렇게 늙을까 봐 무서웠다. 그래도 서른 넘는 인생을 살아가며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하는 어른의 모습을 본 적이 많이 없었는데.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거울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정확히 말하면 점검했다. 나의 얼굴은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괜스레 한 번 더 미소를 지어보았다. 미래의 나를 위해.


물론 단 한 번의 구매로 그분을 모두 판단할 수 없다. 그날 정말 집안에 우한이 있었을 수도, 정말 출근하기 싫었던 날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플로리스트 직업이 대중화되며 친절하고, 선한 인상의 사람들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돼 그런 모습을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매일 도로 밖에 진열된 꽃을 보며 나 혼자 상상한 사장님의 모습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판매자와 소비자라는 관계 속에 소비자가 친절하고 기분 좋게 다가갔다면 판매자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팔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바라건대 다른 건 몰라도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니까, 일주일이 끝나는 금요일이니까, 그런 최소한의 배려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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