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혜 Nov 25. 2023

자아, 대출을 갚아 볼까요?

주택담보대출상환기. D-30개월.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10억이 넘는 시대에, 내 집 한 채 있는게 얼마나 복터지는 삶인지는 나도 안다. (* 우리 집은 서울이 아님.) 그렇지만 가진게 집 밖에 없단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집이랑 빚이 있다. 주택담보대출. 집 '씩'이나 있는데, 집 '밖'에 없다는 헛헛한 마음이 드는건, 아무래도 빚 때문일 것이다.


34살, 난생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 여태 남의 돈을 빌려 살아본 적이 없었다. 능력 밖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기에 대출 없이 사는게 가능했다. 수수하게 살았다. 신혼집은 강원도 동해에서 전용면적 49㎡에 보증금 4000만 원에 월세 4만 원으로 구했다가, 3년 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마침(?) 누수가 터졌다. 벽 안쪽으로 흐르는 누수를 따라 거뭇거뭇 곰팡이가 생겼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라는 신의 계시인가! 전용면적 59㎡에 전세금 6483만 원인 집으로 이사했다. 동해에서 살면 사는데 큰 돈이 들지 않았다.


모아둔 돈보다 적게 쓰며 살아가니 어찌나 풍족하던지. 심지어 여윳돈도 남았다. 집 한 채 더 사서 월세도 받고, 저축도 하며 지냈다. 부족함보다 풍요로움을 느끼며 절약하는 족족 계좌에 차곡차곡 쌓으며 모든게 만족스럽던 어느 날. 처음으로 비싼 것이 탐났다. 내가 가진 돈을 모아도 모자랄만큼 비쌌다. 살던 집과 투자용으로 세 주던 집을 모두 정리해도 돈이 많이 모자랐다. 그것은 강릉의 한 신축 아파트였다.


집 '씩'이나 있는데, 집 '밖'에 없다는 느낌이 드는건빚 때문일 것이다.

왜 탐이 났을까. 거기에는 삼척, 동해, 강릉을 통틀어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도 없는 유일하고 어마어마한 단 한 가지 매력이 있다. 바로 안전한 등굣길. 요즘 말로 초품아다. 집 현관문을 출발해 학교 교문에 도착할 때까지 자동차를 단 한 대도 마주치지 않고 갈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위로는 차가 다닐 수 없는 정원이고, 아파트 후문에 이어진 육교만 건너면 바로 교문이 나온다. 아이들이 차로 인해 죽거나 다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식의 안전. 그것은 자식 가진 부모로서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갖고 싶은 굉장한 장점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자. 결심한 뒤 분양권 양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1년 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은행이랑 약속했다. 저희가 10년 안에 고정 금리 3%로 매달 꼬박 원금균등상환하겠습니다!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본 소감은 '이거 생각보다 엄청 불쾌한 일이네요.'다. 대출금을 갚아도, 여전히 갚아야 할 대출금이 남는다. 수중에 현금이 있어도 내 돈 같지 않다. 내가 가진 모든 게 은행의 몫이란게 이토록 지저분한 기분일 줄이야. 이 낯선 기분이 싫어서 매달 원금균등상환을 하고도, 또 돈을 갚는다. 생활비를 빼고 남는 돈은 모조리 중도상환으로 밀어넣고 있다. 대출잔액이 줄어들 때마다 더부룩함이 가시고 조금 상쾌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출은 여전히 남아있다. 매달 꼬박 일을 해도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니! 적당히 일하고 번 돈 보다 적게 써서 남는 돈을 저축하는 그 맛. 그 정직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게 됐다. 대출을 모조리 갚아야 이 체증이 해결될 것이다.


갚아야겠다.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쓸거라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되도록 짧은 이야기가 되기 위해 애써볼게요!) 적당히 일해서 조금 쓰고 남는 돈은 저축하는 짜릿함을 만끽하기 위해!


자아, 대출을 갚아 볼까요! 목표는 D-30개월 안에 완전 탕감. 전략은 절약.


                                                                                                                     - 2022년 7월 2일



* 2023년 10월 17일. 주택담보대출을 모두 상환했습니다.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동안 블로그에 기록했습니다. 대출을 갚는다는건 어마어마하게 불쾌한 경험이었지만, 대개 삶의 고비들이 그렇듯 사람을 한층 성장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다 갚고 나니 하는 얘기죠. '대출을 통해 배울점이 참 많았어.'라며 사람 좋게 웃습니다.


하지만 대출금 속에 감정이 푸욱 잠겨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블로그에 기록해둔 주택담보대출상환기에는 휘발시키기 아쉬울 정도로 날 것의 감정이 그대로 녹아있더군요. 대출금에 쫓겨 약이 바짝 오른 험한 모습과 때로는 갚아나가며 콧노래를 부르는 가벼운 모습이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


과거의 거친 기록을 글로 다듬어 천천히 올리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