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상환기. D-30개월.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10억이 넘는 시대에, 내 집 한 채 있는게 얼마나 복터지는 삶인지는 나도 안다. (* 우리 집은 서울이 아님.) 그렇지만 가진게 집 밖에 없단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집이랑 빚이 있다. 주택담보대출. 집 '씩'이나 있는데, 집 '밖'에 없다는 헛헛한 마음이 드는건, 아무래도 빚 때문일 것이다.
34살, 난생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 여태 남의 돈을 빌려 살아본 적이 없었다. 능력 밖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기에 대출 없이 사는게 가능했다. 수수하게 살았다. 신혼집은 강원도 동해에서 전용면적 49㎡에 보증금 4000만 원에 월세 4만 원으로 구했다가, 3년 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마침(?) 누수가 터졌다. 벽 안쪽으로 흐르는 누수를 따라 거뭇거뭇 곰팡이가 생겼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라는 신의 계시인가! 전용면적 59㎡에 전세금 6483만 원인 집으로 이사했다. 동해에서 살면 사는데 큰 돈이 들지 않았다.
모아둔 돈보다 적게 쓰며 살아가니 어찌나 풍족하던지. 심지어 여윳돈도 남았다. 집 한 채 더 사서 월세도 받고, 저축도 하며 지냈다. 부족함보다 풍요로움을 느끼며 절약하는 족족 계좌에 차곡차곡 쌓으며 모든게 만족스럽던 어느 날. 처음으로 비싼 것이 탐났다. 내가 가진 돈을 모아도 모자랄만큼 비쌌다. 살던 집과 투자용으로 세 주던 집을 모두 정리해도 돈이 많이 모자랐다. 그것은 강릉의 한 신축 아파트였다.
왜 탐이 났을까. 거기에는 삼척, 동해, 강릉을 통틀어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도 없는 유일하고 어마어마한 단 한 가지 매력이 있다. 바로 안전한 등굣길. 요즘 말로 초품아다. 집 현관문을 출발해 학교 교문에 도착할 때까지 자동차를 단 한 대도 마주치지 않고 갈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위로는 차가 다닐 수 없는 정원이고, 아파트 후문에 이어진 육교만 건너면 바로 교문이 나온다. 아이들이 차로 인해 죽거나 다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식의 안전. 그것은 자식 가진 부모로서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갖고 싶은 굉장한 장점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자. 결심한 뒤 분양권 양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1년 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은행이랑 약속했다. 저희가 10년 안에 고정 금리 3%로 매달 꼬박 원금균등상환하겠습니다!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본 소감은 '이거 생각보다 엄청 불쾌한 일이네요.'다. 대출금을 갚아도, 여전히 갚아야 할 대출금이 남는다. 수중에 현금이 있어도 내 돈 같지 않다. 내가 가진 모든 게 은행의 몫이란게 이토록 지저분한 기분일 줄이야. 이 낯선 기분이 싫어서 매달 원금균등상환을 하고도, 또 돈을 갚는다. 생활비를 빼고 남는 돈은 모조리 중도상환으로 밀어넣고 있다. 대출잔액이 줄어들 때마다 더부룩함이 가시고 조금 상쾌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출은 여전히 남아있다. 매달 꼬박 일을 해도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니! 적당히 일하고 번 돈 보다 적게 써서 남는 돈을 저축하는 그 맛. 그 정직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게 됐다. 대출을 모조리 갚아야 이 체증이 해결될 것이다.
갚아야겠다.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쓸거라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되도록 짧은 이야기가 되기 위해 애써볼게요!) 적당히 일해서 조금 쓰고 남는 돈은 저축하는 짜릿함을 만끽하기 위해!
자아, 대출을 갚아 볼까요! 목표는 D-30개월 안에 완전 탕감. 전략은 절약.
- 2022년 7월 2일
* 2023년 10월 17일. 주택담보대출을 모두 상환했습니다.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동안 블로그에 기록했습니다. 대출을 갚는다는건 어마어마하게 불쾌한 경험이었지만, 대개 삶의 고비들이 그렇듯 사람을 한층 성장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다 갚고 나니 하는 얘기죠. '대출을 통해 배울점이 참 많았어.'라며 사람 좋게 웃습니다.
하지만 대출금 속에 감정이 푸욱 잠겨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블로그에 기록해둔 주택담보대출상환기에는 휘발시키기 아쉬울 정도로 날 것의 감정이 그대로 녹아있더군요. 대출금에 쫓겨 약이 바짝 오른 험한 모습과 때로는 갚아나가며 콧노래를 부르는 가벼운 모습이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
과거의 거친 기록을 글로 다듬어 천천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