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혜 Jan 29. 2019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검소한 삶

절약, 그 낭만적 철학 - 망한다 해도 내 삶이 무너지지 않을 방법

자이글을 사지 않고 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게 진짜 현명한 걸까?


검소한 삶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팍팍 담은 말이 바로 '구질구질'이 아닐까. 진정한 짠순짠돌의 가정에는 대체로 버리지 못한 물건이 박스 째로 쌓여 있고, 돈 아까워서 여가 생활 참느라 가족들 얼굴에 생기가 없는 줄 안다.


그렇지 않았다. <멋진롬 심플한 살림법>의 저자, 장새롬 작가만 해도, 검소한 삶으로 '결혼해도 나답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세 번째 책 제목이 <결혼해도 나답게 살겠습니다>이다.) 


절약가인 그녀는 월급 3일 전 통장 잔고 '0원'이 찍혀도 덤덤하다.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 된다며 시원하게 넘긴다. 대신 그녀는 소비에서 오는 즐거움보다 직접 그림을 그릴 때, 설레는 강의를 들을 때, 책을 읽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결국 직접 그린 드로잉을 엽서로 상품화하고, 책의 일러스트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책을 랜덤 박스처럼 배송해주는 '비밀책' 사업을 소일거리 삼아 한다. '궁상'맞은 절약가와는 거리가 멀다.


절약이 오직 돈을 더 모으기 위함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커피도 원두 말고 믹스만 마셔야 할 것이다. 나는 한 푼, 두 푼 모은 돈이 더욱 가치로운 일로 환원되는 절약을 사랑한다. 단언컨데, 자이글로 구운 삼겹살은 내 취향에 있어 가치로운 일의 우선 순위에서 꽤 멀다.

살림이 안정된 시댁에 가면 자이글로 소고기 등심을 구워주시지만, 남편과 내 월급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면 포기해야 할 일들이 여럿 생긴다. 


자이글로 소고기 등심 구우면, 일단 나는 복직해야 한다. 여유로운 집안일은 물건너 간다. 우당탕탕 저녁에 밥 하고 빨래 널어야 한다. 편안한 쉼을 사랑하는 한량 부부는 더 이상 책 한 장 넘기기 쉽지 않은 일상을 견뎌야 할 것이다. 


건조기를 사면 좋아하는 책에 밑줄 긋고 메모하며 볼 수 없다. 매번 외식하면 집 앞 카페에서 로스팅한 예가체프 원두를 사서 드립 커피 내리고 싶어도, 맥심 화이트 모카 골드만 마셔야 한다. (물론 믹스를 무척 사랑한다. 육아로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건 맥심 뿐이다.)


쓴 만큼 벌어야 한다. 지출만큼 소득이 있어야 한다. 빼기가 있으면 더해야 한다. 그러니까 돈을 쓰면 다시 벌어야 한다. 그만큼 일도 해야 하고.


돈으로 더 나은 물건을 얻는 것보다, 행복한 일상을 살아내고 싶다. '소유'보다 '~함'의 자유를 얻고 싶다. 튿어진 옷을 바느질로 기워 입을 지언정, 하고 싶은 공부, 쓰고 싶은 글, 걷고 싶은 산책로, 여유있는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 물건을 조금 덜 사랑하는 나로서는, 제한된 벌이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살려면 물건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웃도, 그리고 양가 어른들 또한 마찬가지다. 값비싼 선의를 쉽게 받을 수가 없다. 누군가가 비싼 물건을 선물하면, 그 대가로 그 분들도 포기해야 할 것이 생긴다. 물건에 대한 나의 관심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보다 적으므로, 호의와 선의를 어렵사리 거절한다.

'동백산' 비파네 가족 앓이 중이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환경'과 '자유'라는 가치를 선택하고 실천한 그들 가족이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하다. <안녕, 동백숲 작은 집> 사진

조상 대대로 유복한 집안이라면, 혹은 적은 시간 일 해도 큰 돈을 버는 고부가가치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물건과 자유와 안정된 미래까지 모두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순전히 내 상황이 평범하게 일 해서 돈 모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물건을 내려놓았다.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와 안정된 미래를 위한 여윳돈을 택했다.


어떤 경우에도 되새겨 생각해볼 일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의 소유물은 그 일에 방해가 됩니다.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중. 헬렌 니어링 지음.


'노동'과 '소비'를 할 때, 그 때 그 때의 선택으로 무엇을 얻고, 잃을지를 생각하며 살고 싶다. 검소한 삶을 살며, 이젠 내가 무엇을 더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지를 즐겁게 고민한다. 물건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가치로운 성장을 통해 얻는 행복에 골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검소한 삶에 있다.

이전 13화 돈 한 푼 안 쓸 수록 박수 받는 사람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