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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Jan 03. 2019

가난하길 잘했다.

우리의 신혼은 단출했다. 27살 아가씨와 28살 청년에게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양가 어른들의 노후를 지켜드리고 싶었고,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넉넉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은행 돈으로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큰 집은 언감생심이었고, 가구 하나를 들일 때에도 신중해야 했다. 


결국 텔레비전을 들이지 못했다. 쓸만한 벽걸이 TV는 200만 원 웃돌았고, 벽걸이 TV가 아니려면 TV 다이를 마련해야 했다. 49㎡ 거실은 너무 좁아 TV 다이를 놓으면 공간에 여유를 잃었다. 보고 싶은 영상은 중고로 산 아이패드로 보기로 하고, TV 구입을 포기했다.     


으레 TV가 있을 거실 벽에는 책장 두 개가 들어섰다. 우리의 작은 공간에는 책 읽고 토론하는 진지함으로 가득해졌다. 심심해지면 밖으로 나가 강변 산책을 했다. 산책을 하면서 쉬지 않고 떠들었다. 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책 읽고, 산책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며 웃었다. 함께 바라보는 삶의 지향을 독서와 책을 통해 맞춰나갔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여전히 책 읽고, 산책하며 산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놀이동산보다 근처 공원을 찾는다. 남편과 아이는 종종 공원에서 '기쁨의 댄스'를 춘다.


TV 뿐이랴. 김치 냉장고, 소파, 무선 청소기, 건조기, 의류 스타일러, 커피 머신 등 편리한 사치품을 거절했다. 누가 사준다고 해도 매우 작은 우리 집엔 놓을 자리도 없었다.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밥솥, 청소기, 전기포트, 전자레인지, 컴퓨터, 그리고 핸드폰과 아이패드. 우리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이게 전부다.


신혼살림부터 물건에 길들여지지 않은 덕분에 몸을 움직일 줄 알았다. 김치 냉장고가 없으니, 더 많은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없었다. 대신 자주 장을 봐서 필요한 만큼만 식재료를 넣어두었다. 신선한 야채를 냉장고로 신선하게 하지 않고, 그냥 신선한 야채를 그때그때 사 먹었다. 빨래는 햇볕에 뽀송하게 말렸다. 잘 마른빨래에서 햇볕 냄새가 났다.


서서히 몸으로 알아갔다. 무조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돈 대신 몸을 움직이면 조금씩 저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사치품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치품에 길들여지는 순간, 필수품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핸드폰과 TV처럼 말이다.


더구나 우아한 생활양식은 오히려 돈을 쓰지 않아야 가능했다. 특히 아이 둘이 태어나니 더욱 그러했다. TV를 보는 대신 엄마, 아빠와 침대를 바다로 상상하며 항해했다. 날 좋을 때는 공원을 찾아 걸었다. TV 소리 대신 아이패드에서 음악이 흐르고, 가족은 실없는 대화를 나눴다. 


외식 대신 단출한 가정식으로 차렸고, 어린아이들 데리고 남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식사했다. 오감놀이센터 말고, 놀이터에 널린 민들레와 별 아재비를 꺾어 꽃다발을 만들며 놀았다. 나뭇잎에 크레파스로 색칠했다. 돌멩이를 모아 탑을 쌓거나 케이크를 만들고, 때로는 얼굴 표정도 만들었다. 아마 오감놀이센터에 갔다면, 색소로 물들인 당면 위를 아이가 헤엄쳤을 거다. 다른 아이들 콧물이랑 같이.


아이들 등원 후, 조용해진 집에서 차려먹는 건강하고 간소한 밥상.


집에 미디어가 없으니, 광고로 뭔가를 사야겠다는 욕구도 없다. 어느 정도가 '남들만큼' 사는 건지 잘 모른다. 그러니 독자적인 생활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기가지니가 뽀로로 노래로 아이를 깨워주는 것보다, 엄마, 아빠가 방문을 살짝 열고 부산한 아침 식사 준비 소리로 깨우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은 늘 아빠의 출근 준비 소리와 엄마가 계란을 깨뜨려 계란말이 하는 소리로 깬다. 난 아이들이 부스스하게 일어나 방문을 열고 기어 나오는 그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아직도 가난하냐고? 그럴 리가. 돈을 안 썼는데, 가난 할리 없지 않은가. 월세 한 채 잘 굴리며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월세 받은 돈으로 TV 살 거냐고 물으신다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답해드리고 싶다. 책 읽고, 산책하고, 글 쓰고, 아이들과 몸으로 노는 지금의 삶을 잃고 싶지 않다. 남편과 알콩달콩 가꾼 따뜻한 우리 집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럼 월세를 왜 받냐고? 사피엔스의 역사는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미래의 불안을 대비하는 본능이다. 자산은 자산이고, 삶은 삶이다. 자산이 많아진다고 지금 만족스러운 삶에 필수품이 될 사치품을 들일 필요는 없다. 로또를 맞아도(하지도 않지만), 지금처럼 살 거다. 더 많이 소비하려고 월세 받고 절약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가정의 셀프 안전망이다. 월세를 받고, 지금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대대손손 이어갈 자산을 구축할 거다.


가난은 다른 사람의 소득과 비교에서 나온 정의일 뿐이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개인주의자인 우리 삶에서 무슨 상관인가. 가난을 부끄럽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 삶은 삶이고 돈은 돈이다. 돈 없이 시작한 신혼 덕분에, 돈과 삶의 분리를 몸에 익힐 수 있었다.


혹시 지금 돈이 없어 신형 가전제품을 못 들이는 가정에게 축하의 말씀을 건네드리고 싶다. 겉으로 불행을 위장한 채 온 행복의 다른 모습이다. 가전제품의 빈자리를 가족의 값진 노동으로 채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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